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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이는 눈부신 꽃이다 / 문정희

조용한ㅁ 2014. 8. 29. 02:01

모든 나이는 눈부신 꽃이다 / 문정희

 

 

 발레리가 괴테를 찬양하는 글에서 괴테가 천재가 될 수 있었던 여러 조건 가운데 으뜸으로 그의 장수를 꼽았던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괴테는 1세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살면서 그것도 인류의 정신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살면서 온갖 역사적 자양을 유유자적하게 종합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가 살았던 긴 생애 자체가 바로 그 내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술에서는 흔히 요절한 천재에 대한 동경이 많지만, 뜻밖에도 대문호나 거장을 보면 장수를 누리면서 그의 업적을 산맥처럼 쌓아 올린 사람이 참 많다. 장수는 생명이 누려야 할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축복임이 분명하다. 위대한 예술가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래오래 지상의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균수명이 늘어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명 가진 존재로서 더할 수 없는 행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어이없지만 나는 30세가 되면서부터 내가 조금 늙었다고 생각했다. 잉게보르그 바하만의 유명한 수필 ‘삼십 세’에도 그런 구절이 있긴 하다. 30세가 되면 늙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젊다고 우기기에도 어딘가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40세에도 그랬다. 40은 불혹 不惑이라는데 나는 불혹은커녕 사방에 유혹이 넘쳐 있어 당혹한 나머지 어정쩡한 모습으로 40대를 살았다. 다만 혹 惑 앞에서 조금 당황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며 젊지도 늙지도 않은 40대를 보낸 것이다.
50세는 콩떡 같았다. 뷔페 상 위에 놓인 콩떡은 말랑하고 구수하고 정겹지만 선뜻 누구도 손을 내밀려고 하지 않는다. “진종일 돌아다녀도 개들조차 슬슬 피해가는/ 이것은 나이가 아니라 초가을이다”라고 나는 ‘오십 세’라는 시에서 탄식했다.
하지만 요컨대 나이란 나이일 뿐인 것이었다.한마디로 인간에게 있어 시간은 언제나 새것이었다.

최근 옆구리를 둔도로 치는 것 같은 작은 충격을 준 한 여성이 있었다. 젊은 날 뉴욕 유학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무용가 한 분이 결혼을 한다고 알려온 것이다. 신랑이 누구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한 살 연하라고 대답했다. 가만있자… 그러니까 신랑은 69세다. 그녀의 결혼 기사는 신문에도 났고, 텔레비전에도 소개되었다. 연일 그녀와 신랑의 나이가 화제로 대두되었다. 70세 신부라니….
그녀는 말했다. 나이 들수록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퓨리파이 purify(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70세 신부인 그녀를 축하하다 말고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나이만 생각하다가 그만 두 사람의 사랑을 못 볼 뻔한 것이다. 신랑의 나라인 독일을 한달간 다녀왔다는 70세 신부의 얘기를 듣다 보니 노년의 사랑이 생각보다 뜨겁고 자유롭고 거침없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전, 또 한 분의 할머니가 나를 일으켰다. 99세 할머니가 낸 첫 시집(시바타 도요가 낸 <약해지지 마>)이 70만 부나 팔려서 지금 일본 열도를 흔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문학을 논하기에 앞서 시적 詩的 요소가 깨소금처럼 박힌 아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가락이었다.

천재 괴테를 만든 것이 그의 장수였고 또한 그가 살아온 역사적 전환기가 대문호를 만든 일대 자양이었다면, 99세 할머니 시인의 시적 자양은 넘치도록 충분한 것이다. 일찍이 겪은 첫 남편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또 한 번의 결혼과 아이를 낳아 기르며 겪은 인생의 온갖 곡절들이 그것이었다. 그녀는 1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사는 동안 누구보다 풍성한 삶의 경험을 비축한 것이다. 당연히 그것을 시로 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버린다.


_졸시 ‘늙은 꽃’ 중

최근 나의 시집 <
다산의 처녀> 맨 첫 장에 나는 이 시를 놓았다.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목숨이란 순간을 피우는 눈부신 꽃이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일흔을 넘긴 예술가가 외국인 학자와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현대무용가 홍신자(70)씨가 9일 오후 제주돌문화공원에서 독일의 한국학자 베르너 삿세(69) 한양대 석좌교수와 '홍신자 시집가는 날'이란 이름으로 화촉을 밝혔다.

이날 결혼식은 예식과 공연이 어우러진 축제의 마당으로 펼쳐졌다. 하객들이 연꽃차(茶)를 나누며 시작, '하늘연못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신랑신부의 만남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본격적인 식은 서도소리 박정옥 명창이 총괄하는 전통 평양식 혼례로 치러졌다.

두 사람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열린 미술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 삿세 교수는 호남지방을 여행하고 있던 홍씨와 우연히 재회했다. 이후 제주도와 남해지방 여행을 함께 다녔다.

앞서 지난 4월 삿세 교수가 거주하는 전남 담양의 목조 기와 한옥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커플한복을 입고 60명의 하객 앞에서 사랑을 약속했다.

홍씨는 1967년 스물일곱 늦은 나이로 뉴욕에서 춤에 입문했다. 1973년 파격적 형식의 무용 '제례(祭禮)'로 "동양 미학을 서양의 전위무용에 구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세계적인 무용가 반열에 올랐다. 한창 활동하던 30대 후반 훌쩍 인도로 떠나 라즈니시에게서 명상과 구도의 춤을 익혔다. 1993년 영구 귀국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터를 잡고 '웃는돌 무용단'을 이끌며 자연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

삿세 교수는 독일인 최초의 한국학자로 40년 이상 한국과 인연을 맺어오다 2006년 한국으로 아예 이주했다. 유럽한국학협회(AKSE) 회장을 지내고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독일어로 처음 번역한 저명한 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