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수필.기타

[스크랩] 세탁삼매 / 반숙자

조용한ㅁ 2014. 9. 10. 10:12

 

 

 

세탁삼매 / 반숙자

 

 

“또 빨래야? 세탁기는 두었다가 삶아먹을래? 안 쓰려거든 엿장수 불러다 엿이나 사먹지.”
그이의 성화가 귓전을 때린다. 세탁기가 시판되자마자 서울에 사시는 시어머님 특명으로 ‘백조 세탁기’를 곧바로 들여놓았다. 언제나 약골인 며느리가 농촌일에 시달리는 것을 안쓰러워하시던 시어머니와 애처가라면 첫째라고 뽐내는 그이의 열성에 힘입어 들여온, 목욕탕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세탁기다.


맑은 물을 칠 부쯤 붓고 가루비누를 훼훼 저어 놓은 후 단추 하나만 누르면 왜앵왜앵 모터가 돌아가 세탁이 되는데, 한두 번 돌려보니 탐탁지가 않았다. 고운 때가 묻은 남방셔츠나 수건, 양말짝 할 것 없이 집어넣기만 하면 휘휘 말려 들어가 뭉쳐지는 것도 언짢은데 겉 때와 속 때가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구정물이 되고 보면, 거기서 건져내는 세탁물이 처음보다 더 구저분해지는 것이 께름칙했다.


또 한 가지는 세탁하면 싹싹 문지르고, 지려 잡아 비비고 홀랑 뒤집어 흔들어 씻어내고 맑은 물에 헹구는 그 맛 아닌가. 그래서 나는 세탁기는 장식품처럼 놔두고 빨래 함지를 이고 앞개울로 나가는 것이다. 뒤통수에 와 박히는 그이의 따가운 시선을 짐짓 콧노래로 뭉개고 오솔길로 나오면 여기저기 풀숲에서 튀어나오는 개구리가 찬 등을 맨발에 비비기도 하고 꼬리 저으며 따라오는 강아지가 좋아라 장난을 친다.


하천 둑에는 달맞이꽃이 노랗게 피다 만 채 있고 군데군데 피어 있는 패랭이꽃 보랏빛이 수줍다. 냇물은 언제 보아도 시원스럽다. 어떤 날은 파란 빛깔이 물감처럼 번져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바알간 노을이 조약돌에 걸려 한 폭의 수채화가 되기도 한다. 하천 둑에 서 있는 미루나무가 물속에 거꾸로 춤추고 냇가에 나와 놀던 송사리 몇 마리가 발소리에 놀라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방귀를 뀌는지 뽕울뽕울 물방울이 올라온다.


저만큼에는 풀을 뜯다 쇠똥에 주저앉은 황소가 되새김질로 낮잠을 달래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이듬 매놓은 논에서 한바탕 술래잡기하던 바람이 지나가면서 벼 내음을 털고 간다. 물속으로 비치는 삼라만상은 신비롭고 아늑하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도 처음 본 여인처럼 생소하지만 그 너머로 펼쳐진 옥빛 하늘로 인해 정겹고 상념마저 일으키게 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천국天國의 길 한귀퉁이도 이처럼 평화롭고 아늑할까. 나는 빨래함지를 판판한 돌 위에 내려놓고 팔소매를 걷어 올린다. 굽이치며 흐르는 시냇물에 두 손 두 발을 담그면 전신으로 퍼져오는 시원한 물줄기에 마치 생명수를 마시고 소생하는 환자처럼 생기가 난다. 푸푸 맑은 물로 세수를 하고 수건을 빨아서 머리에 걸쳐놓으면 준비 작업이 끝나는 것이다. 빨랫감을 꺼내 무색을 따로 구분하고 속옷, 겉옷, 작업복을 각각 나누어 물에 적셔 돌 위에 얹어놓는다. 차례로 한가지씩 물을 흠뻑 묻혀 서너 번 비비고 곰살궂게 비누칠을 한다. 땀에 찌든 소맷부리, 솔기마다 끼어있는 때를 싹싹 비벼 도올돌 흐르는 물 위로 좌악 펴 놓으면 땟국은 밑으로 뿌옇게 떠내려가고 거무죽죽했던 옷은 하얗게 물 위에서 춤춘다. 이 맛이다. 이렇게 깨끗하게 빨아지는 맛이다.


그러나 모든 옷이 그렇게 쉽게 세탁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쉬운 것이 화학섬유, 섬유질이 곱고 물을 먹으면 가녈가녈해져서, 마치 처녀 속살을 만지듯 보드랍다. 면 내의나 베갯잇, 이런 것은 솔기에 비누칠을 잔뜩 하고 싹싹 문대고 비벼대기를 몇 번 해야 하는데 대개의 것은 비누칠을 해서 삶아야 하니까 따로 놓는다. 제일 힘든 것은 청바지류다. 물을 먹기가 무섭게 뻣뻣해져 잘 비벼지지도 않고 와삭와삭 비벼대도 때가 잘 빠지지 않는다. 솔에 비누를 묻혀 문지르고 헹구고 또 문지르고 헹구고 땀을 흘리다 보면 나도 이런 모질고 우악스러운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기사 사람도 여러 종류이다. 삽삽하고 정겨우면서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 질긴 사람 이런 사람은 화학섬유계일까. 무덤덤하고 약삭빠르지 못해도 착한 천성으로 제 할 몫은 다하는 면류 같은 사람, 역경을 만나도 끄떡 않고 힘은 힘으로 욕은 욕대로 갚으며 버젓이 살아가는 청바지류. 청바지를 헹구다 물속을 본다. 소리내며 흘러가는 시냇물 속엔 물살에 씻긴 조약돌이 한결 청아하다. 억만 년을 씻기며 떠내려 온 조약돌, 나는 얼마나 씻겨져야 저토록 무욕무심無慾無心의 경지에 이를 것인가. 사실은 식구들의 눈총을 무릅쓰고 냇가로 내닫는 속셈은 이것이다.


곰보 빨랫돌에 옷가지를 올려놓고 칠하고 문지르고 비비다보면 나는 어느덧 세탁삼매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그 작업 속에 더러운 옷가지만 빨리는 것이 아니고 찝찝한 내 마음의 때까지 정제精製되는 것이다. 주책없이 미워지는 자잘한 일상, 허무맹랑하게 부풀어 노는 탐욕의 불길, 엉뚱하게 구름이 되고 싶다는 보헤미안의 분노, 이런 것들이 얽히고 설켜 모진 때가 되어 나를 바수어대면 나는 빨래함지를 이고 개울가로 내닫는 것이다.

 
물살에 비친 남루한 내면을 방망이로 두드려 부수기도 하고 얻어맞고 아파하는 또 하나의 나에게 연민의 눈길을 붓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세탁은 나만의 카타르시스가 아닌지, 부득불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마다하고 개울가에 퍼질러앉아 나를 빨아내는 이 작업이 심산 암자에서 참선의 빗질로 자기를 찾아내는 수행승의 고행과 닮은 것은 아닐지, 오늘따라 가섭산은 더욱 높고 아득하며 냇물을 무심히 흐르기만 한다.

 

-좋은수필 2013년 8월호-

 

 

반숙자 --------------------------------------------

반숙자님은 충북 음성 출생. 수필가,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음성지부장, 수필집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 《천년숲》 외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