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있는 풍경 / 홍수희
시간이 나를 짊어지고 가고 있다.
그가 나를 낡은 자전거의 짐칸에 태우고
느릿느릿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
그가 느릿느릿 녹슨 페달을 밟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등을 꼬옥 껴안고 있는 일이다.
가끔은 지나치는 풍경을 보기 위해
실눈을 뜨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도대체가 이 칠 벗겨진 고물 자전거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만
부글부글 초조함이 끓어오르기도 하지만
무심한 그는 내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때로는 오르막길을 때로는 내리막길을
아주 잠깐씩은 편평하고도 비좁은 길을
묵묵히 느릿느릿 페달을 돌리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하여 때로는 내가 시간을 끙끙
짊어지고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
도대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기다려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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