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인이 ‘응향 사건’으로 월남한 것은 우리 나이로 스물여덟 살 때였다. ‘응향 사건’은 1946년 함경남도 원산의 원산문학가동맹이 출간한 광복기념시집『응향』(凝香)에 얽힌 필화 사건이다.
북한에 조선공산당북구조선분국이 창립된 후 문학은 새 시대에 맞춰 한 길로만 걸어갈 것이 요망되었다. ‘문학은 인민을 위한 인민의 문학이어야 한다’는 편향된 논점에서 한 치도 흔들려서 안 되는 숙명 앞에 놓인 것이다. 때문에 인민과 당의 정서에 따르지 않은 모든 문학작품은 반동의 대상으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개편된 북한 문학권력 체계의 입장과 노선을 또 공식적으로 확인시킨 것이 바로 ‘응향 사건’이다.
당시 원산문학가동맹의 위원장은 박경수였다. 『응향』에는 강홍운ㆍ구상ㆍ서창훈ㆍ이종민ㆍ노양근 등의 시가 실렸고, 화가 이중섭은 장정을 맡았다. 시집 『응향』은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원산지부에서 간행된 만큼 북한 당국의 정책 노선에 맞서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또한 이 시집에 작품을 실은 시인 모두가 무계급주의자였고, 반인민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북쪽의 문예정책 담당자들은 『응향』이 문학예술 활동의 대전제가 되는 현실 파악에서 과오를 범했고, 인민에게 봉사할 자세를 지니지 않는 채 퇴폐적 경향에 흘러버렸다고 지적했다. 이후 반동적으로 규정된 데 따른 일련의 조치는 『응향』의 발매 금지와 검열원의 파견, 편집과 발행의 경위를 조사했다. 작가의 사상 검토와 자기비판, 간부까지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개 지방조직에서, 그것들도 시인들의 작품집이 몰고 온 파문치고는 그 파장이 너무 컸다.
당시 ‘응향 사건’에서 비판받았던 대표적 시는 강홍운의 「파편집」과 구상의 「길」과 「여명도」였다.
문학에 대한 당의 관료적 제재의 시작을 알린 ‘응향 사건’의 배경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1946년 8월 즈다노프의 이름으로 소령 당 중앙위원회가 조시젠코와 아프마또바를 비판하고 그들의 작품을 실은 『별』과 『레닌그라드』에 대한 폐간을 결정한 사건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남쪽의 우파 진영에 있던 김동리는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응향』에 내린 결정서가 인류문화사에 일찍 그 유례가 없는 문학의 탄압이며 폭거”라고 반박했다. 남과 북 모두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응향 사건’은 북쪽만이 아니라 남쪽 문단에도 아주 뚜렷한 교훈을 제시했다.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하의 시와 예술은 오직 당의 문예정책에 순응하는 것으로만 이뤄진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집에 실려 있던 시 가운데 일부가 애상적이고 허무한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1946년 12월 20일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상무위원회가 소집되면서 필화 사건으로 점화되었다. 상무위원회는 이 시집을 퇴폐적이며 반인민적인 것으로 규정한 결정서를 발표하였고, 최명익ㆍ송영ㆍ김사량ㆍ김이석 등을 검열원으로 원산에 파견하였다.
특히 이 결정서가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이듬해 4월 ‘시집 『응향』에 관한 결정서―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회의 결정서’라는 제목으로 게재되면서 남한 문단에도 알려져, 김동리를 시작으로 조연현ㆍ곽종원ㆍ임긍재 등 우익 문인들이 반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상은 이 사건을 계기로 월남했고, 북조선 정권의 사회주의 문학에 대한 관점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남한의 보수 문단은 친일 논란을 잠재우고 반공주의를 공고히 하며 결속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의 필화 사건인 이 사건에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한민국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 시기의 정치적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표현의 자유 억압 사건으로 보고 있다.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현실 도피적이고 정권에 대한 회의적 정서를 담고 있는 『응향』 수록 시들은 착취 계급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고 있으며, 건국 시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반동 행위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명도(黎明圖)
동이 트는 하늘에
까마귀 날아
밤과 새벽이 갈릴 무렵이면
카스바 마냥 수상한 이 거리는
기인 그림자 배회하는 무서운
골목…….
이윽고
북이 울자
원한에 이끼 낀 성문이 뻐개지고
구렁이 잔등같이 독이 서린 한길 위를
횃불을 든 시빌이
깨어라!
외치며 백마를 달려.
말굽소리
말굽소리
창칼 부닥치어
살기를 띠고
백성들의 아우성
또한 처연한데
떠오른 태양 함께
피 토하고
죽어가는 사나이의 미소가
고웁다.
길
이름 모를 귀양길 위에
운명의 청춘이
눈물 겨웁다
보행(步行)의 산술(算術)도
통곡에도……
피곤하고
역우(役牛)의
줄기 찬 고행(苦行)만이
슬프게
좋다
찬연(燦然)한 계절이
유혹한다손
이제사
역행(逆行)의 역마(驛馬)를
삯 낼 용기는 없다
지혜(知慧)의 열매로
간선(揀選)받은 입설에
식기(食器)를 권함은
예양(禮讓)이 아니고
노정(路程)이
변방(邊方)에 이르면
안개를 생식(生食)하는
짐승이 된다
뭇 사람이 돈을 따르듯
불운(不運)과 고뇌(苦惱)에 홀리워
표석(標石)도 없는
운명의 청춘을
가쁘게 가다
참고; 김윤식, 『해방공간의 문학사론』, 서울대학교출판부, 1989.
김용직, 『북한문학사』, 일지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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