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도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운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출처]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 - 도종환|작성자 세상과 가까워지기
'아름다운글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가을 /천양희 (0) | 2018.02.28 |
---|---|
피천득 (0) | 2018.02.24 |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피천득 옮김) (0) | 2018.02.20 |
밖에 더 많다/ 이문재 (0) | 2018.02.20 |
빵집/ 이면우 (0) | 2018.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