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하고 불러놓고 아무 말도 못하였네.
- 남상근 라파엘 신부 -
어느날
성채 등만 지키고 있는
감실 앞에 앉아
내 지치고 힘들어서
주님께 말씀 드리려고
"주님!" 하고 불렀다가
제대 위 바라보니
주님 지고 가신
무거운 십자가 생각나서
차마 말씀 드리지 못하였네.
너도 나처럼 지쳤구나
너도 나처럼 힘들구나
말없이 말씀하시는 당신이
내 마음이어서
아무 말도 못하였네
어느날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고
아픈 탓에
사람이 아니라
당신 앞에 무릎 꿇고
내 위로 받고 싶어서
주님께 말씀드리려고
"주님!"하고 불렀다가
피땀으로 기도하신 겟세마니의 주님이 생각나서
차마 말씀 드리지 못하였네
너도 나처럼 아프구나
너도 나처럼 위로받고 싶구나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당신 눈길이 내게 다가와
아무 말도 못하였네
매일 매일 다가오는
내 십자가 너무 무겁디 무거워
견디기 힘들다고 투정하려고
고개 숙이고 한숨 쉬면서
주님께 말씀드리려고
"주님!"하고 불렀다가
세 번이나 쓰러지시며 골고타 오르신 주님 생각나서
차마 말씀 드리지 못하였네
너도 나처럼 무겁구나
너도 나처럼 쓰러졌구나
오히려 내게 위로해 달라시던 당신 음성이 들려와서
아무 말도 못하였네
가족들도 친구들도
나를 이해 못해서
속상하고 답답하기만 한 날
주님은 아시겠지 하고
주님께 말씀 드리려고
"주님!"하고 불렀다가
고향에서도 모욕당하시고
제자들에게도 버림받으신
나의 주님 생각나서
차마 말씀 드리지 못했네
나도 너하고 똑같았단다
나도 너처럼 이해받지 못했단다
주님께서도 속상하셨다기에
주님께서도 버려지셨다기에
아무말도 못하였네
기도조차 할 수 없던 어느 날에도
십자가 위에 달려
피 흘리시며 기도하신
당신을 생각하면
아무 말도 못하겠고
사랑이 다 식어 버린
차가운 날에도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신 말씀이 떠올라
아무 말도 못하겠고
쩔쩔매며 지낸 하루였어도
받아 먹어라
받아 마셔라
남김없이 내어 주신 당신 몸과 피가 어른거려
아무 말도 못하는 나는....
주님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불평할 수 없게 하시는 탓에
힘이 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고난에 차마 비길 수 없어
차마 힘들다 말할 수 없어
"주님!"하고 불러놓고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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