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업기
아버지는 어머니와 싸우실 때면 그림을 한 장 그려놓고 집을
나가신다.
그러면, 그림이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달랜다.
어느날
'엄마업기'라는 이 그림을 그려놓고 아버지는 매우 기뻐
흥분하셨다.
내게 메모지에 쓴 글도 하나 보여 주시며 읽어 보라고 하셨다.
내가 다 읽을 때까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나를 살피시는 느낌도
받았다.
그 글은 훗날 보니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홈페이지에도 올려두신걸 보았다.
그 쪽지의 내용은...
전해줄 것을 전해준 아내의 행복과
그 먼 곳으로부터 이어져오는
사랑의 무게를 업고 바들거리는
아들의 다리를 봅니다.
깃털처럼 가벼워졌어도
엄마의 무게는 업고 버티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도 아빠를 닮았는지 그 속 뜻을 알것 같았다.
매화골
시련이 꽃을 피웁니다. 조용한 꽃...
상상의 계절
여름에 그린 설경은
너무도 하얘서
차마 밟지 못하고
되돌아가네.
안개가 많은 날입니다
기다림을 등진 듯
호수는 따로 물길을 텄지만
그럴수록 더 영롱한
그리움입니다.
조용한 바닷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비움의 고요를
그대와 함께 하고 있을 뿐입니다.
찻잔속의 개화
원동 배냇골 가는 길목
성요한 수도원을 찾았더랬지요.
사순의 성체조배를 하고,
구두 뒷굽에 해동의 젖은 황토를 한 짐 지고
뒤뜰을 돌아 나왔지요.
향기 머금은 매화꽃 봉오리 몇 개
손으로 꼬옥 감싸쥐고...
그렇게 바람처럼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한나절 동안 차 안에서 나눈
친구와의 신론 대화만으로도 흥감했는데,
더 욕심을 내어
산고개 너머 삼랑진의 ‘윤사월’ 펜션을 들러
봄나물처럼 풋풋한 그 집 내외분께
떼를 써서 냉이국 얻어먹고...
찻잔 늘어놓고
감춰 간 매화 그 속에 띄워
우리 네 사람, 머리 조아려 찻잔의 개화를 감탄합니다.
말로도 붓으로도
끝내 그 향은 그려 낼 수 없었지만
분명 혀끝, 코끝의 감각과
그 시간의 고요함은 기억되고도 남았습니다.
응시
바라보는 것들은 모두
사랑이어야 합니다.
산속의 호수
양 희 창
구원에 이르게 하는 우리 인생의 뗏목은 무엇일까요?
뗏목은 단지 목적을 향한 도구이기에
뗏목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전 아직도 제 인생의 뗏목조차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섬진강 - 전기다리미와 할머니
"얘야, 전기다리미 스위치를 살짝만 꽂아라, 전기세 많이 나올라."
우리 할머니는 전기도 수도꼭지처럼 스위치에서 조절 되는 줄 알고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플러그를 깊숙히 꽂으면 전기가 많이 흘러나와서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는 줄 아셨으니..
어디선지 당신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부터 무슨 줄 같은 것을 통해 공급되어지는 것에의
낯섦이 할머니에겐 사용의 편리함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불안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수돗물을 바가지에 받는 모습과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푸시는 모습은
그 다루시는 자신감의 모습에서 비교도 되지 않게 달랐으니까..
나는 할머니의 '전기다리미 이야기'를 두고 매사에 검소하셨던
우리 선친들의 생활력이거나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뿌리라고
간간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삶은 경험이다'
경험은 각자만의 것이고, 그 각자의 다양성이 모여 인간의 굴레가 되고
경이롭게도 그 경험이 '순리'라는 초월적 힘에 의해 통일되어
유유히 역사라는 것을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수 많은 정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받아 들이며,
그것을 주초(柱礎)삼아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할 경우가 많다.
모래같은 불안한 반석일지라도 사람들의 눈을 혹하게 해야 하는 모델하우스 같은 집...
우리에게 꽃보다 뿌리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친구야!
언제 한번 일 덮어 두고 지리산에나 가 보자.
섬진강을 거슬러.....
[글.그림 : 문인화가
'하삼두'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