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파이프를 든 소년》1억416만달러
파블로 피카소가 1905년에 그린 ‘파이프를 든 소년(Garcon a la pipe)’이 5일(2004/05/05) 경매에서 1억416만8000달러(약 1218억원)에 낙찰됐다. 이 금액은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다. 미국 뉴욕 소더비사가 주최한 이날 경매에서 워런 웨이트먼 소더비 북미 회장은 익명의 구매자를 대신해 9300만달러를 적어 내 최종 낙찰됐다. 구매자는 그러나 경매 수수료를 포함해 총 1억416만여달러를 내야 한다.이날 경매가는 1990년 빈센트 반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이 세운 최고가 기록 8250만달러를 깨뜨린 금액이다. ‘파이프를 든 소년’은 피카소가 파리에 정착한 직후인 24세 때 그린 작품으로 꽃무늬 벽을 배경으로 왼손에 파이프를 들고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을 그렸다. 소더비측은 “이 그림은 미술시장에 나온 피카소의 초기작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피카소의 그림 중 최고 판매가는 2000년 ‘팔짱을 낀 여인’이 세운 5500만달러였다. 이날 경매는 존 헤이 휘트니·베시 휘트니 부부가 세운 ‘그린트리’ 재단이 공익사업을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내놓은 작품 34점으로 진행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휘트니 부부는 20세기 미국서 가장 유명한 컬렉터. 휘트니 부부는 ‘파이프를 든 소년'을 지난 1950년 3만달러에 구입했다. 피카소가 스물네 살 때 그린 이 작품은 화가가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던 작업실 주위에서 만난 소년이 모델이다. 머리에 화관을 쓴 채 왼손에 파이프를 든 소년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 피카소의 장미 시대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존 헤이 휘트니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회장·영국대사 등을 지냈다. 자선사업가로도 유명한 부인 휘트니 여사는 1998년 작고 당시 미국 미술관 4곳에 총 3억달러어치에 달하는 미술품을 남겼다. 현재 경매가 3위에 올라 있는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7810만달러), 6위인 세잔의 정물화(6050만달러) 등도 한때 휘트니 부부 소유였다. 이로써 역대 경매가 순위 10위에 피카소와 고흐가 각각 4점, 3점씩 올리게 됐다.
파리의 바토라부아르( 화가,조각가,시인,행상인 등 온갖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낡은 공동체 건물 )에 있는 피카소의 작업실에 자주 놀러 오던 루이스라는 소년을 그린 이 작품은 원래 습작이었다. 당시는 피카소가 모델의 자세 그리는 연습에 치중했던 시절이었다. 1905년에 완성된 이 그림은 피카소가 프티 루이라고 부르던 꼬마의 신비한 표정과 어른이 되어가는 소년의 묘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색감으로 장밋빛시대(1904~1906)의 행복하고 친근한 색감이 최대한 발휘된 걸작이다. 1905년에 제작된 피카소의 작품이 몇점 없고, 1996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딱 한번 전시되었으며,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는 작품이라는 희소성과 작품 상태가 완벽하다는 점, 안목 있는 컬렉터의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이 작품이 세상에서 가장 비쌀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피카소가 이 시기에 그린 그림은 버림 받은 사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가난과 소외를 개인의 무능이나 운명 탓으로 보았기 때문에 비참함 보다 신비한 기운이 더 강했다. 그러기에 부유층에게 현실의 부조리를 잊게 해주고 색다른 위안을 줄 수 있었다. 빈센트 고호 1890년 작 《Dr. Gachet의 초상 1890년 5월, 오베르 캔버스 유채 68 cm × 57 cm》,1990년 8,250만 달러
빈센트 반 고호의 'Dr.Gachet의 초상'은 1990년 뉴욕 경매시장에서 한화기준으로 1천 80억원 정도에 거래 되었다.
폴 가셰는 세잔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다.고흐가 가셰박사의 동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카미유 피사로 (프랑스 출신 인상파 화가) 덕분이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던 가셰박사는 흥분하기 쉬운 성격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고흐는 이따금 둘 중 누가 더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인지 생각하기도 했다. 가셰박사를 모델로 고흐는 한 선량한 사람에게서 느끼는 호의를 담아 뛰어난 초상화를 남겼다.
1890년 5월 21일 고흐는 오베르 쉬르오아즈에 도착하였다. 인상파 화가들의 후원자였던 폴 가셰 박사는 고흐를 자신의 집으로 맞이하여 그의 의사이자 친구가 되었고 또 자진해서 그의 모델이 되었다. 고흐가 가셰박사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셰 박사는 겨울눈 속의 붉은 집을 그린 아주 아름다운 피사로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있다"며 경탄했다고 한다
가셰 박사가 고흐를 만났을 때 그는 61세로 그 이전부터 도미에,쿠르베,마네, 피사로, 세잔 등과 가까운 교분을 가진 친구였다. 그는 유사요법 전문가였는데 고흐는 이 의사가 손에 '폭스글로브'라는 약초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단조롭게 채색된 캔버스의 파란색 바탕에 갈색 창과 노란 끈, 연한 색채 등으로 모자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역동적인 붓터치로 생기를 불어넣고 있으며 다갈색의 머리카락과 군청색 옷 등 두드러진 색을 통해 가셰의 열정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번역된 "가셰 박사의 초상"(예담풀판사)에서 보면 환자였던 고흐는 의사인 가셰에게서 자신과 닮은 병적인 징후를 보았고 가셰의초상화를 자화상 그리듯 그려냈다. 네덜란드 요한나(동생,테오의 부인) 집에 걸려있던 "가셰박사"는 1896년 프랑스를 거쳐 덴마크로 넘겨진다.코펜하겐의 전위예술 애호가의 것이었던 "가셰박사"는 8년후 시인 호프만슈탈과 화가 뭉크의 친구였던 독일 바이마르 박물관장 케슬러의 소장품이 된다. 1910년 블룸스버리 그룹의 평론가 프라이는 케슬러의 소장품을 빌려 영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영국인들은 "가셰박사"를 배멀미에 시달린 노인 같다고 비웃었다. "가셰박사"는 1911년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에 팔리지만 1930년대 퇴폐 예술품으로 낙인찍힌다. 히틀러의 수하였던 헤르만 괴링은 박물관으로부터 "가셰박사"를 압류, 외국에 판매함으로써 전쟁비용을 충당하고자 했다. 은행가 쾨니크스가 "가셰박사"를 사서 유태인 금융업자 크라마르스키에게 다시 팔았다. 크라마르스키는 2차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1950~1960년대 "가셰박사"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었던 이유다. 1990년 "가셰박사"는 경매사상 최고가인 8,250만 달러에 팔린다. 새로운 주인은 일본 제지회사 다이쇼와의 사이토 회장, 그러나 사이토는 3년후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재판 3년후 세상을 떠난다.
루벤스 1609년~1611년 작 《유아대학살》7,350만 유로 "유아대학살"(The Massacre of the Innocents)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4천950만6천650파운드 한화로 약990억원에 낙찰됐다. 헤롯왕의 유아대학살 순간을 그린 그림이다. 성경의 구약에 오래 전부터 탄생이 예언되었던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때 그 당시 지배하던 헤롯왕이 자신의 지위를 위태롭게 여겨 사람을 보내어 그 시기를 표준하여 두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는데 그 탐욕을 담은 학살을 바로크시대의 화가인 루벤스가 1609-1611년 사이에 그린 것이다.
르느와르(Pierre Auguste Renoir) 《물랭 드 라 걀레트 1876년작품/캔버스에 유채/131*175cm》7,810만달러 파리 오르세 미술관 야외에서 태양광선의 작용을 관찰하면서 풍경을 그리는 것이 인상파의 본령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르느와르는 계속 인물만을 그렸던 예외적인 존재였다. 인상파의 모네나 르느와르도 원레 마네 일행들처럼 당시 풍속화였던 인물 중심의 그림을 그림으로써 아카데미의 신화화나 역사화 같은 뒤늦은 시대적인 작풍에서 독립했던 것이다. 르느와르는 처음에는 쿠르베류의 검은 모자를 쓴 인물들을 그렸지만 마네의 감화를 받아 점차 밝은 색조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애무하는 듯한 독특한 필촉은 인상파 풍경을 그리더라도 독특한 촉감적 관능을 초목에까지 부여하고 있다. 그는 인상파의 광선 본위의 관점에서 인물화를 다루고, 거기에 흔들리는 분위기와 빛에 싸인 인체의 매력을 표현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몽마르트에 있는 서민적인 야외 무도장에서 초여름 햇빛이 나무사이로 비치고, 무리를 이룬 젊은 남녀의 춤과 즐거운 놀이를 그린 르느와르의 걸작이다. 고흐《수염없는 예술가의 초상》1998년 7,150만달러 '수염없는 예술가의 초상'은 1998년에 고흐가 말년에 자신의 어머니에게 생일선물로 주기 위해서 그린 자화상이다. 이 그림은 19일 뉴욕 크리스티경매장에서 7150만2500달러(약 915억2300만원)에 팔렸다. 이 자화상은 그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초 이 작품을 2000만~2500만달러(약 256억~320억원)에 거래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까지 거래된 고흐 작품중 최고가로 팔린 것은 8250만달러(약 1056억원)에 매각된 '가셰 박사의 초상화'다.
17세기 바로크 풍격의 천재 예술가 루벤스작《죄없는 자들의 학살》7,670만 달러 세잔 《커튼 항아리 과일접시가 있는 정물》 6.050만 달러 피카소《포옹하는 여자》5,560만달러 고흐(Vincent Van Gogh)《아이리스(붓꽃) 1889 캔버스에 유채 71x93cm 》5,300만달러
이 유명한 그림은 아를 주민들의 비난을 피해 요양원에 와서 안정을 얻게 된 고흐의 푸근한 마음을 표현한다. 이 그림은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정원에서 제작했다. 금잔화가 붓꽃의 행진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은 마치 기념식에 참가한 군중들 같은 생동감을 준다. 색채는 본능적으로, 통제되어 있다. 고흐의 격렬한 감정은 정교하게 관찰한 실제 꽃의 느낌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피카소《꿈 1932년 캔버스 유채》4,840만 달러
피카소는 조는 여자를 수 없이 많이 그렸다. 그의 말대로, 정면상과 프로필이 일체가 되어 감상자의 기분에 따라서 보여주는 그림들이 <꿈> 시리즈다. 조용함과 풍요함은 아우트 라인만으로 충분히 포착되어 있다. 정면상과 프로필의 2중상은 재미있는 형체와 아울러 현실과 꿈의 양면성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는 그의 연인이 바뀔 때마다 작품에 새로운 모습이 등장하였고 그 표현 방식 또한 모두 달리 그려졌다. 그의 삶에 있어서 이 같은 사랑의 열정이야말로 바로 창조의 근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피카소는 일생을 통해 7명의 여인들과 동거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남겼으며, 성적 욕망을 다룬 관능적인 작품들도 다수 남겨 최근 파리에서는 「피카소 에로틱」(Picasso Erotique)전이 열리기도 하였다.
<꿈>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인은 바로 피카소의 네 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이다. 피카소는 1927년 첫째 부인 올가에게서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에 이 여인을 만났는데, 당시 테레즈는 불과 17살이었다. 피카소는 올가와 결혼한 뒤 귀족층과 어울려 파티를 즐겼으며 40대 이후에는 그림들이 파격적 가격으로 팔려 나감으로 점차 거부가 되어 갔다. 그리하여 마리 테레즈를 만날 즈음에 그의 그림 값은 부르는 것이 값이 될 정도였다. 러시아 귀족 출신이었던 올가는 1921년 아들 파울로를 낳은 후, 유모, 요리사, 하녀, 운전사 등을 두어 점차 더 사치스런 생활을 했고, 피카소는 올가의 지나친 상류 사회 생활에의 집착으로 갑갑함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다가 1924년부터 불기 시작한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에 대한 피카소의 관심은 안정된 생활의 분열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때에 피카소는 우연히 금발 머리의 젊고 아름다운 한 처녀, 마리 테레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리스 고전 조각에서 볼 수 있는 똑바른 콧날과 푸른 회색 눈을 가진 아주 이상적 미인이었다. 테레즈는 피카소가 다가가서 자신을 소개했을 때, 당시 이미 유명한 화가였던 그를 알지 못할 정도로 미술에는 문외한이었으며 대화가 통하는 상대는 못되었던 듯 하다. 그러나 피카소는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6개월 동안 구애하였으며 결국 자신의 집 근처에 비밀리에 거처를 마련하여 그 후 몇 년간 열정적으로 이 여인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렸다. 어린 테레즈는 순종적이고 희생적이었다고 전하는데, 이러한 그녀의 특성을 드러내는 듯이 피카소는 독서를 하거나 잠들어 피카소에게 시선을 맡긴 테레즈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인데, 꿈을 꾸는 여인의 모습에서 평온함과 긴장의 이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굴과 몸에서 푸른빛과 연분홍빛을 의도적으로 절반씩 사용한 것은 현실과 꿈이라는 두 세계를 표현하려고 한 의도가 아닐까 한다. 피카소가 그린 다른 여인들에 비해 마리 테레즈를 묘사한 작품들은 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격정적이며 분석적인 다른 인물 표현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여기서도 인체를 해부하듯이 파악하여 표현하는 방식이 일부 엿보이기도 한다. 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대상의 모습의 재현보다는 대상의 다양한 모습, 특성들을 한 화면에서 드러내고자 한 의도를 얼굴의 배치나 부분적으로 분리하여 그려낸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분석적인 표현보다는 평면적이며 아름다운 채색의 효과가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한 율동미를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 시기는 피카소가 마리 테레즈와 평온했던 한 때였던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과 평안은 오래가지 못했으며 이후 1935년 테레즈가 22살의 나이로 딸을 낳았을 때, 피카소는 이미 도라 마르라는 지적이고 세련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세잔《정물화》 6,050만달러 피카소 <팔짱 낀 여인 Woman with Crossed Arms> 5,500만 달러 '팔짱 낀 여인'은 피카소의 그림들 중에서 "파이프를 든 소년(Boy with a Pipe)" 이전에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피카소의 청색 시대인 1901년에서 1902년에 그린 것으로, 2002년 11월 뉴욕에서 5,500만달러에 판매되었다.
피카소 <정원에 앉아있는 여인> 4,950만 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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