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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그게 언제 부터였는지 모르겠어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든가, 어떤 어떤 방법이 있다던가 등등 내게 충고를 하거나 명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시작된것이.....

누구의 어떤 말이든 그것은 내게 잔소리, 혹은 시닯잖은 군소리에 불과했지요. 그래서 책을 사게되면 詩集, 그것도 몇편 읽어봐서 그저 감성적이어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없이 마음을 털어놓은, 그 글이 내 감성과 통할듯 싶은 시집만을 샀어요.

티비를 볼 때도 교양이나 시사엔 통 관심을 두지않고 가능한한 단순한 드라마만 골라서 보았죠.

어떤 친절한 사람이 내게 무얼 가르쳐 줄 량이면 속으로 '누가 가르쳐 달랬나? 그거라면 내가 먼저 박사다'하고 비웃기도 했지요.

 

당신.

혹시 이 노파가 또 무슨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거야? 하고 짜증부터 나지 않나요?

그뿐 아니고 대부분의 모든것이 쓰잘데기 없고, 성가시고, 제발 조용히 있게 내버려 두기를 바라지는 않나요? 

 

제가 꼭 그랬었거든요.

 이렇게 밖에 살아내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고 챙피해서 어디로든 사라져 버리고 싶고,차라리 나 같은 인생이 왜 태어났을까 한심하기도 했어요. 가능한 한 혼자 있고자 했고 아무도, 아무것도 소중한게 없었으며, 단지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일탈이니, 주부 안식년이니 하는 의식은 커녕 그런 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안개에 갇힌듯 허우적이는 세월이 한 10년쯤 흘러갔어요.

 

 

 

 

그러던  어느날 문득 세상의 모든 욕망을 포기한 자신을 보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조차도 오만한 마음이었지만,

성당의 고해실에서 사제에게 그동안의 죄를 고백하며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있게 죽고 싶다고,그렇게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사제가 내게 해 준 다른말은 생각나지 않지만 "자신있게 죽고 싶다고요?"라고 되묻던 말씀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살아오면서, 하느님게서 부르실 때 진정 그가 義人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있게  "예, 하는님 저 여기 있습니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 할수는 없다는, 오직 그 분의 자비하심에 의지 해서만 그분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걸 차츰 알아가기 시작했고 그 느낌은 늘 나약했고, 세상의 싸움에 패배했거나 도망쳤던 부끄러운 자신을 부드럽게 끌어안게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부디 자신을 그냥 좀 내버려 두시라는 겁니다.

무슨 뜻과 같이 되지 못한 일에 처했을 때 가장 최종적으로 책임을 추궁당하고 비난과 질타로 상처를 입은 이가 누구 였으며, 그 상처를 입힌 이는 누구였습니까? 아마 틀림없이 당신 자신이었을 겁니다. 상처를 입은 이도, 상처를 입힌 이도........

 

60살이라는 한 해가 지나고 진정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환갑이란 나이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아름답고 다소곳한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온갖 잡다한 물건들로 어지러운 핸드백 한자리에 한권의 책이 들어있고, 生을 다한 잎새가 붉거나 노랗게, 혹은 벌레에게 물린 구멍이 있는채 땅에 떨어져 있고, 그것을 줍고 있는, 이제는 구부렸던 허리를 냉큼 펴지 못하는, 그래서 잠시 벤치에 앉아 아까 주운 잎새를 책갈피에 꽂고있는 , 제법 괜찮아 보이는.....

 그녀는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녁 찬거리를 시러샀다가 반찬값 보다 훨신 않은 돈을 들여 장미 한다발을 샀던 기억을 떠오리며 미소를 짓습니다.

그때는 몰랐었지요.

아이들과 시어른과 감성이 통하지 않는 남편과 부대끼며사느라,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한 여자인지를...

그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착한 여자인 나 자신이 60의 고개를 넘기고 나니 보이더란 말입니다.

 

요즘 나는 내가 참 좋습니다.

몸의 여기저기 아픈곳도 있지만, 60여년 이란 세월을 잘 봉사해 왔으니, 그럴수도 있지 않나요?

깜빡깜빡 잊어버리기 일수인 머리도 그래요, 그럴수도 있지요, 오히려 60년 세월동안 기억해야 할 그 많은걸 다 기억하고 있는게 장하지요.

 

어느날 내 작업실에 들른 후배가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온통 청회색으로 그려진 그림들을 보며 말했었지요. '선배, 그림을 좀 밝게 그리세요, 마음이 그렇더라도....그래야 마음도 젊어지고 좀 팔리기도 하지요'

아닌게 아니라 팔기 위해서는 곱고 예쁜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결코 유명하지 않은, 나의 그림을 사 가는 사람들은 예술적 가치나, 소장가치를 따질 필요가 없었으므로 어디엔가 장식해서 효과적일것을 요구했고, 그런 쓰임을 염두에 두고 그린 화사한 그림들은 대부분 팔려나갔자만 청회색 그림들은 동그마니 화실에 남겨져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우울한 그림들이 눈물겹도록 반갑고 고맙습니다.

내 삶의 가장 암울햇던 날들.

이게 아닌데...이렇게 사는게 아니었는데.. 가슴을 쥐어뜯으며 쓰러져 울던 그때, 진정으로 나를 쓰다듬고 위로하며 같이 울어 주었던 나의 분신들.

차라리 저 눈 속에 파둗혀 죽고 싶을때 그렸던 그림은 청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뿌리를 눈 속 깊이 묻어둔 한 그루 나무로 서 있고, 모두 버리고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었던 날의 그림은 노을지는 바다 너머로 한마리 새가 되어 나르고 있습니다.

 

얘기가 사뭇 길어졌군요. 이래서 "늙은이 잔소리"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하지만 이말 한마디 "나이는 헛 먹는게 아니라 은총이다"라는 말은 꼭 하고 싶어요. 그때, 콱 죽어버리고 싶었던 그 때 죽었으면 이런 행복한 날을 맞을 수 있겠어요?

지금의 마음이 가눌길 없이 외롭고 부끄럽더라도 그냥 지나가도록 문을 열어 놓으세요. 그 외로움이 지나간 문으로 다정한 노년의 삶이 들어온답니다.

 

여기 마 종기 님의 낚시라는 시를 두고 갑니다.

황혼이 시작되고 있는 고개마루에 서서 아직도 못 다한 일을 앞에 두고 동동 발을 구르거나 어쩌면 이미 실망하고 있을지도 모를 님들께, 여러분의 나이쯤에 여러분처럼 쓰러져 울었던 어떤이의

시 한줄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서.. ...       

                                                                                                        

낚시질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기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平生을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낚시질하다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中年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   

 

                      - 글. 그림편집 조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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