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상점-2 2005년작,디지탈작품
작년에 그렸던 그림과 오늘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을 혼합하여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수채화 기법을 나름대로 응용해 보았는데 그림그리기 전문 프로그램인 '페인터'를 사용하지 않고 '포토샵'만으로 시도해 본 것이 '포인트'로 Opecity(투명도)를 여러 부분 나누어 적용함으로써 그 질감 표현의 깊이를 달리 표현해 보았다. 이 때, 질감의 깊이는 투명과 불투명의 농도 정도에 따라 '겹'이 생김을 의미한다. 전혀 사실적 묘가가 아니면서도 입체감이 생기는 것이다.
서울의 인사동이나 황학동같은 곳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골동품점 '쇼우 윈도우'는 마치 역사의 필름이 겹겹히 그 두께를 달리하며 전시된 것 처럼 느껴진다. 비록 한 자리에 머물러 옛 자태를 드러내고 있지만 時空間的 배경도 다를 뿐더러 표정도 당연히 각기 다르다. 그러한 시각에서 바라 본 골동품들의 이미지들을 조합하고 분해하여 형상화 해 본 반추상 작품이다.
Airport 2005년작,디지탈작품
몇일 전에 탐구하였던 작품,<모정>과 같은 필법으로 그린 그림으로, 많은 경험과 새로운 시도에서 오는 또다른 유형의 창작물이다. 극도로 절제하며, 최소한의 부연 설명만 허락하는 구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 그리고 잡다하지 않은 심플한--그래서 더욱 현대감각이 살아나는--그림으로 마치고 싶었다.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 나는 비행기 사진만 무려 200장이 넘는 스크랩을 하였다. 그 수많은 비행기 사진 중 비행기의 Nose라 할 수 있는 머릿부분을 하나 트리밍하기 까지 나의 고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먼저 그렸던 이 여자의 '떠남'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치 광고의 '카피라이더'처럼 화면상의 문장을 정리하고 또 압축하였다. 이런 경우, 뒷 배경의 비행기는 바로 사진을 손질하여 오버랩한 것인데 그것을 굳이 그려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나는 작가로서의 소임만 다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화가여야 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현대미술,특히 디지탈 미술은 '그린다'는 것만이 표현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상큼하고 '쿨'하게 이 그림을 마쳤다.처음 내가 상상하고 예측한 것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Tour이건 '비지네스'이건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설레임 그 자체이다. 공항의 풍경은 늘 이러한 가슴 설레임으로 인해서 호흡을 가파르게 한다. 아! 그림 그만 그리고 몇달만 어디 갔으면 좋겠다.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
Illusion-2 2005년작,디지탈작품
이 '환상'이라는 제목의 <일루젼>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 그리는 작품으로 나는 이 단어가 주는 알 수 없는 매력에 자주 유혹을 받곤 하였다. 환상이란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또 그러한 실제에 존재하지 않는 幻映들이 갖는 의미가 어떠한 방식으로 내면적 충동을 야기하는가가 관심의 표적이었다.
五感이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을, 그것이 유형적이건 무형적이건 조합하여 하나의 형상으로 그려내 보이는 것은 환상이라는 영역이 자유로움에 근거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좋은 것이다. 의식의 자유스러운 유영은 지적 고찰을 풍부히 할 뿐더러 聯想의 시발점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그림의 제목처럼 어떠한 형식에도 얽메이지 않은 인물화 한 점을 그렸다. 비구상도 추상작품도 아닌, 마음가는대로의 그림이고 응축된 내면의 자유스런 표현이다. 편안한 대화의 상대로써,부담없는 말벗으로 다가온 이 작품 속의 여인은 오래토록 나의 연인으로 자리를 지킬 것이다.
The-letter 2005년작,디지탈작품
많은 시간을 고민하였다. 어떤 제약,피해야 할 과정,넘어서야 할 선과 같은 명제들이 너무 많이 내 의식을 에워싸고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외설스럽지 않아야 하고,회화성이 있어야 하고,그림이 시사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작품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하고,흥미위주의 표현을 탈피해야 하는 등........ 그래서 이 그림은 시작부터 스스로 논란에 빠졌던 어려움이 따랐다. 컨셉은 어느 외국 잡지의 포즈 사진을 참조하였지만 그것을 작품화하고 예술적 승화를 시키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나의 몫이었으므로 많은 난제에 부딪친 것이었다. 화면 구성의 특성상 수없이 캔버스(화면)을 돌려 가며 그렸다. 기술적 테크닉도 아주 고난도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마지막으로 우표 한 장을그녀가 바라보는 허공에 띄워 놓고.......
나는 그 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긴---------장문의 편지를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깨알처럼 썼다. 우표가 암시하듯이, 멀리 있는 그녀이기에 손에 닿지 않는 (Untouchable)이 주는 애틋함이 더하여 단 한마디로 끝날 그리움과 사랑을 어미변화해 가며 풀어 쓰고 나눠 쓰고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그래서 이 그림의 제목이 '편지'다. Love letter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Lily 2005년작,디지탈작품
한 송이의 백합,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지극히 단순하고 쉬운 그림을 한 점 그리고 싶어 시작한 경쾌한 작품이다. 아트포스타처럼,단순한 벽면의 장식화가 되어 준다면 그 소임을 다하고도 남을,그런 '데코레이션'그림.
때로는 그림에 아무 말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나 스스로 정형화된 틀에서 탈피하여 휴식하고 싶은 것이다. 그냥, '이쁘다' 이 한마디면 족한....
모정 2005년작,디지탈작품
새벽에 그린 이 작품은 표현 구사에 관한 새로운 암시를 스스로에게 부여한, 나로서는 의미있는 그림이다. 거의 대부분의 내 작품이 해상도가 낮은 모니터 감상용인데 반하여 이 작품은 처음부터 Resolution(해상도)를 300까지 올려서 인쇄용으로 그린 그림이다.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그림 한장이 보통 그림의 약 16장 크기에 해당하는 큰 그림으로 시작하여 그린 것으로 그만큼 정밀도가 높아 확대를 하여도 픽셀이 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해상도를 올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밀한 묘사를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시작하였고 색상의 톤도 Black & White를 근간으로 최소한의 색상만 사용하여 분위기를 가라 앉혔다.
이 작품의 인물은 1950년도 6.25피난 당시 피난민들을 찍은 다큐멘타리 사진중에 아주 작은 부분을 확대를 거듭하여 모티브로 삼았다. 내가 1살 때,바로 저렇게 이북에서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피난을 왔다. 어쩌면 바로 저 모습이 나와 나의 어머니 모습같아서 더욱 애착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다. 아마도 이 모델(?)의 할머니도 살아 계신다면 여든이나 되시지 않을까 싶다.
모래밭에서 귀한 보물을 하나 건진 듯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새벽에 한 점 완성하였다.
그녀의-기차놀이 2005년작,디지탈작품
이 작품은 기차놀이란 주제를 희화한 그림인데 장난감을 보다가 그림으로 옮겨 보았다. 아이들 장남감은 서울의 지하철 2호선마냥 순환선이다. 아무리 밧테리를 틀고 돌아 보아야 제 자리인 것이 어쩌면 챗바퀴 도는 우리 인생과 흡사하여 허탈감마저 느끼게 된다. 아무리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도 답답함이란 설명할 수가 없고 어제 온 길을 오늘 또 가고 내일도 가야한다고 생각하면 털썩 주저앉는 마음을 붙들 수 없다. 가도 가도 끝없는 제자리 걸음.... 그녀는 이제 기차에서 내리고 싶다. 이 기차놀이를 그만 두고 싶은 것이다.
우리집 강아지가 아주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어 누가 오면 뺏길새라 그놈부터 물고 내빼는 버릇이 있었는데 어느날 저를 닮은 작은 곰 인형을 하나 사다 주었더니 예전의 것은 쳐다도 보지 않고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하였다. 작은 강아지도 새로운 변화를 이리 좋아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누구 말처럼 '여자의 변신은 무죄다'. 그런 생각들을 한참하며 그린 작품이다. 여자와 장난감을 제외한 기차와 레일은 사진을 오버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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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2005년작,디지탈작품
이 작품은 2-3일 전에 그렸던 그림인데 오늘 올린다. 약간 흥분한 상태를 진정도 할겸, 차분한 그림을 올렸다. 나는 보통 하루에 2점 정도의 작품을 하는데 혹시 외부 일로 몇일간 자리를 비울 경우,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공백이 생겨 방문객이 실망할까봐 항상 4-5점의 미개봉 작품을 보관하는 편이다. 지방으로 갔을 경우에도 가까운 PC방에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씩 의도적으로 창고를 비우고 다 올려 버릴 때도 있다. 곳간이 비었으니 큰 일이다 하고 스스로 작업에 채찍을 가하기 위해서.... 그런데 오늘의 경우는 이 작품을 올리고도 아직 2점이 남아 있어 조금 전의 상스러운 표현들을 마음속으로 가라앉히려고 차분한 분위기의 정물을 선택하였다.
마침 'Red Wine' 이란 아이디를 갖고 계신 분도 생각나서 올린 소박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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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Sex-10 2005년작,디지탈작품
화가 많이 났다.
아침에 가깝게 지내던 후배가 전화가 와서 '형님 요즘도 밤 세우고 그림 열심히 그리시데요? 존경스럽심다'해 놓고는 속사포같이 나의 그림에 대한 맹비난을 퍼 붓는 것이었다.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왜 자꾸 인기몰이를 하느냐?' 또는 '나이들어서 자꾸 그런 사랑 얘기하면 보는 사람이 많이 껄끄럽다'였다. 내가 선배이기 망정이지 후배같았으면 직살나게 호된 표현을 했을 터이다. '야, 임마, 내가 사랑 이야기를 하건 Sex얘길 하건 그것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런 선배를 둔 너 한테 무슨 피해가 있냐?'고 되물었다. 나는 이래서 이 놈의 <화가>를 하기 싫다.작가도 싫다.예술가도 싫다...... 무슨 놈의 이 쪽 구덩이는 남의 일에 그리 관심이 많고 조둥아리가 전부 하나같이 촉새냐? 내가 사랑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性이 미치도록 좋아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보겠다는데 지들이 나 허구한 날,밤 세우는 데 야식 갔다 줬어?
아... 머리에 김이 다 난다.
덥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그림,혹여 지들 세상에 보리알 처럼 안 낄려고 디지탈이란 영역에 와서 개척자마냥 살을 깍고 있구만......
홧김에 다시 이 시리즈를 그렸다. 남은 모르겠다. 내가 만족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사랑으로 행복한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을 뿐,누가 무슨 비난을 하여도 옆집 개소리처럼 무시하고 싶었다.자꾸 짖는 사람의 수가 늘어 나면 나는 이 땅에 아니 살 생각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는데.....
가뜩이나 못 쓰는 글도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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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남항 2005년작,디지탈작품
어려서 부산에서 자란 나는 이런 비릿한 항구의 풍경에 익숙하다. 부산의 경우는 동쪽에 위치한 항구가 소위 무역선이나 여객선이 정박하고 출입하는 동항이고 영도다리를 기점으로 자갈치를 따라 남부민동에 이르는 곳이 남항으로 소형선박,어선들이 정박하는 어항이다. 영도의 조선소를 위시하여 송도 하단에 이르는 해안은 크고 작은 선박의 수리소가 즐비하고 냉동창고가 수도없이 많아서 전국으로 집배송하기 전 어획물의 창고인 셈이다.
그림의 대상으로는 당연히 이 남항쪽으로 와야 소재가 풍부하다. 특히 수채화 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남항의 풍경은 나로서는 사진처럼 각인되어 눈감고도 그릴 수 있는 풍경이지만 막상 이런 그림을 상상에 의존하는데는 당연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부산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리 저리 자료들을 열람해 보았지만 누가 내 그림 그리기 좋게 찍어 올린 사진이 있겠는가? 급기야는 YTN NEWS의 홈에서 어선들 사진을 몇장 골라내었다. 그리고는 나름대로의 기억을 더듬어 부산남항을 구성하여 본 그림이다. 내가 사진을 참조한 것은 각기 다른 배의 구조 때문이었는데 그려도 그려도 끝이 없는 어항의 풍경은 몇번이고 작업을 하다말고 그만 둘까를 망설일 만큼 머리카락 빠지는 소리가 나는 짜증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려도 그려도 끝도 없는 배들....나중에는 '애라,나도 모르겠다. 대충 이런 것이려니'하고 넘어가기도 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서는 그럴 수도 없었고 왜 화가들이 배 몇척은 거뜬히 그려도 이처럼 펼쳐진 고깃배 항구의 전체를 그리기 꺼려하는가 짐작이 갔다. '연탄불도 그리는 내가 이까짓 것 하나 못 그리랴 하는 오기때문에 약 7-8시간동안 눈도 손도 고생을 많이 하였다.
무엇때문에 이 짓을 하였는가? 비릿한 생선 냄새가 향수처럼 그립기도 했지만 이런 어선들이 만선이 되어서 또는 태풍을 피하려고 옹기 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삶의 현장이 처절하고 사람사는 것이 어려운가를 한 눈에 실감케 되기에 꼭 그려보고 싶었다. 저 무수히 많은 기둥이며 나무 막대기,쇠줄이며 로프,쇠 난간....저런 것들이 도대체 무엇에 쓰인단 말인가? 그네들로서는 한가지도 버릴게 없는 삶의 수단이고 방편일 터이다.
이번 비가 그치면 다시 몰려온 남제주 앞바다에 오징어 잡이를 나가야 한다. 어획량이 좋아야 갑자기 올라버린 전세금에 보탬이 될텐데 어부는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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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쇠 2005년작,디지탈작품
앞서의 그림,'내 안의 나'와 이 작품은 오늘 하루에 마친 그림으로 나 스스로가 만족하는 그림이 되었다. 세상에 그림 그리다 보니 난생 처음으로 연탄불도 그려 보고 석쇠도 그려 보았다. 얼핏 사진인가 생각이 들만큼 꼼꼼히 묘사하였는데 그림을 그리는 나 자신도 사진같은 정밀 묘사에 약간은 고무되었다. 얼기설기 석쇠를 그려 넣으면서 옛적 기억을 많이 떠 올렸다. 너무 달구어진 석쇠는 고기가 눌어 붙으므로 갓 올린 석쇠를 그려야 했는데 그것도 불구멍 가까이에 있는 부분이 당연히 더 달구어 질 것이란 생각까지 하면서 밑 그림을 먼저 완성하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작품 구상을 하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올려 놓고 어느 정도 만져야 식당사진이 아닌 그림 작품이 될 것인가 고심하였다. 결론은 이렇게 압축되어졌다. 꽁치나 고등어처럼 두께가 두꺼운 물체를 올려 놓으면 연탄불 구멍이 막혀 보이므로 재미도 없을 뿐더러 의도 자체가 감소한다.그래서 반쯤 말린 얇은 생선(쥐포같이)을 올려야 투명도가 보상되어 그림의 맛이 난다. 또 올려놓는 물체마저 사실적으로 그리면 작품구성도 안될 뿐더러 시각적 즐거움도 감소한다......이것이었다. 그래서 올려 놓은 마른 생선 두마리는 거친 손다듬으로 이미지만 표현하는 선에서 마쳤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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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나 2005년작,디지탈작품
주제가 다소 무거워서 상대적인 표현에 있어 마치 파스텔화처럼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 부드러운 텃치의 절정에 가서는 면도날 보다도 더 예리한 직선의 벽에 각을 선명하게 주어 주제에 힘을 실어 주었다. 부드러움과 단호함, 또는 직선과 곡선, 밝음과 어두움의 선명한 대비가 이 그림 전체를 내용을 떠나서 조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미리 만들어 두었던 촘촘한 삼베를 필터로 덮어 씌우면서 이 작품은 좀처럼 보기 드문 그림으로 나의 화첩에 고이 보관되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굳이 조성모의 '가시나무 새'노랫말이 아니어도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를 본다. 거울이 아니어도 좋다. 차가운 벽에 가만히 기대어 나를 가늠해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운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에서 부터 어디까지가 진정한 나일까? 어느 부분까지 나 스스로 용납되는 나이고 어떤 부분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일까? 그러나 진정한 나의 모습은 인정하고 싶건 아니건 그 모두다. 감추고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형상이 아닌 나의 세포덩어리들이다. 묵은 빨래감처럼 한가한 시간에 세탁하고 정리해 두어야 할 또 다른 나.....
그림을 마쳤을 즈음엔 날아갈듯이 가쁜한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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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의-회상 2005년작,디지탈작품
화집을 뒤지다 보면 수도 없이 이런 류의 그림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보통사람의 기호나 관심사가 그만큼 비슷한 곳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그림을 왜 그 많은 화가가 그리겠는가? 약간은 환상적이고 꿈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채색화를 사람들은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맛과 향이 다 다른 음식을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듯이 그림도 다 제각각 가지는 향취가 다르므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보아서도 안되고 평가절하해서도 안된다. 나름대로의 가치는 별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뿐이다.
나는 왜 이 그림을 그렸는가? 첫째는 나 자신이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이니까 세계적으로 이런 그림만 주욱 모아 놓은 전시회가 있다치고 나 스스로 점수를 매겨 보고 싶어서가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는 컴퓨터로 일반회화에 조금도 손색없는 작품을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이다. 세번째는 하루도 똑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변화하는 나의 감정에 솔직하고 싶어서이다. 다른 이유도 많이 있겠지만 나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또 다 그려놓고 나 혼자서는 나름대로의 평가를 이미 마쳤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말이다.
그림 제목의 앤나(Anna)는 중국 광동성의 심천에 살고 있는 중국여자로 영어 선생님이고 한동안은 나의 친구이자 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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