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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시

사슴뿔 유희남

내 안에는 사슴뿔이 자라고 있다.
이 뿔을 자르기 위해 매일 자신을 버리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연륜만큼 자란 이 완강한 뿔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내 방 창가 흔들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아본다.
비 오신 끝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바다처럼 가슴에 안긴다.

"주님, 제 안의 이 몹쓸 뿔을 거두어 주소서!"

어느 틈에 나는 다시 묵주알을 잡는다.
끔찍한 불치의 병마를 얻은 지 일 년여 남짓.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실려가기를 거듭하여 여덟 번이나 입.퇴원을 반복했다.
이제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살아오면서 내가 소유했던 모든 것들이 제풀에 모두 다 멀어져갔다.
다만, 병든 육신과 그 병마만큼 반비례하여 맑아지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느낀다.

인간은 누구나 사슴뿔을 제 안에 하나씩 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숨쉬는 것조차 주님이 허락하지 아니 하시면 불가능한 것을 깨달으며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아 왔는가를 느낀다.
내 안에 자라난 사슴뿔 그게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죽음이 얼굴을 들이밀기 전까지만 해도 자랑이고 긍지였지, 장애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뿔은 교만과 아집과 독선으로 빚어진 욕망의 결정체이다.
남들이 흔히 해주던 "책임감 강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글재주 뛰어난 사람" 이라던 달콤한 언어들.
칭찬은 오히려 포수가 다가왔을 때 나무에 걸려, 아무리 뺄래도 빠지질 않는,
그래서 나를 더 옭아맨 사슴뿔이었음을 이제사 깨닫는다.

여고 3년 동안 이화대학 주최 전국 여고생 문예백일장에서
연이어 세 번씩이나 장원을 하면서 주변에서 탁월한 글 솜씨로 칭송 받았다.
이에 고무되어 내 오만한 자존심은 끝없이 자라났다.
여러 번 신춘문예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서른이 넘으면서
한때 주춤했던 문운은 더욱 기세 좋게 떨쳐나갔다.
첫 수필집 <삶의 향기 바람에 날리며>가 베스트 셀러에 오르자
한 무명의 여교사를 작가의 반열에 올려주었다.
행운은 이어져 첫 장편 대하소설 <이카로스의 노래>가 출간되면서,
계약금으로 받은 인세로 나는 차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용산 전쟁기념관에 "영령들게 바치는 국민의 글"로서
산문시 "님이시여"가 시비로 조각되었다.

행운의 여신은 거기서 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카로스의 노래>가 우연히 케이블TV의 한 PD눈에 띄어 읽혀지면서 일일연속극으로 계약되었다.
그야말로 나는 문운의 승승장구를 누렸다.
원고청탁은 쇄도했고 각종 백일장 심사를 맡으며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내 뿔은 겁업이 자라났다.
그런데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였지만, 교만과 오기가 깊게 웅크리고 자리를 틀며
영혼을 썩혀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될수록 더욱 나는 변질되었는지 모른다.

관운도 따라, 관내 최연소 주임으로 발령을 받기도 했다.
서른 다섯 살.
참 앳되고 어려 보였다.
결재 올리는 선배 교사들에게 미안해서 그때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녔었다.
연구주임 자리는 폭주하는 업무와 공문에 빠져 고되었지만,
일에 빠져 있는 답답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집에 싸가지고 와
밤을 설치며 일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정말 시간은 모자랐고 몸은 바빴다.
잠을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떤 날은 아랫배가 뻣뻣해서 그때서야 소변 볼 것을 잊은 줄을 알았었고,
점심을 건너뛰고 수업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 뿔 때문이었다.
내 안의 뿔.

"그녀는 참 대단해.
유능해. 최선을 다하고, 무엇이든지 맡기면 감당해내는 여자야.
글도 잘 써"

나는 이 말에 도취되어 더욱 충실하고자 했었는지 모른다.
남보다 더 멋있고 우아해 보이고 싶었다.
남보다 더 멋있고 찬란하고 싶었다.
어쩌면 불꽃처럼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들 앞에서 더없이 겸손하고 상냥한 척, 온순하고 착한 척 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가장 속물중의 속물인지도 모른다.
판서를 하다가 머리가 핑핑 돌 때도 병원 갈 시간을 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걷는 사람을 미워했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수다떠는 사람들을 경원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교육방송 초창기에 중학국어 스크린 티처에 출연했던 것들이 연이 되어,
국어학습 교재도 여러 권 썼다.
그것은 또 비디오 학습교재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 내 수필집에 썼던 것처럼 불꽃처럼 자신을 연소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이제 무슨 소용인가.

한때는 그리도 찬란히 빛나서,
권위와 영광을 더해주던 그 사슴뿔이 정작 포수가 다가 왔을 때에는,
나뭇가지에 걸려 더 이상 뛰어나갈 수 없는 올가미에 지나지 않는 것을.

나는 내가 밉다.
어쩌면 그런 칭찬을 먹으며 자라는 가장 완악한 뿔.
그것이 암의 원인이었으리라.
그 뿔이 없었다면 나는 영육이 건강한 삶을 누렸을지 모른다.
창가에 늘 찾아오던 참새 두 마리가 포로릉 날아가 버렸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어야 들어올 수 있는,
까다로운 절차 없이 유일하게 내 창가에 찾아오는 새 두 마리.
나는 때로 묻는다.

"너는 진정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숨차게 달려왔는가?
" 세상사 모두 다 헛되고 헛되나니.
그 어떤 새가 허공 중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으리요.
철없이 날뛰었던 얄팍한 자아오류의 함정 .
어쩌면 그 뿔이 완전히 떨어져 나갈 때 나는 비로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코로 숨쉬고 내 손으로 수저를 들고,
혼자서 화장실에 드나들 수 있는 것만 해도 축복인 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이 부질없는 뿔을 잘 드는 칼로 단번에 주님이 베어주실 수는 없을까.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뚫고 꿰어 매달고 붙이고 끼운 후에야
비로소 인생의 가장 값없는 사슴뿔을 볼 수 있다니....

역사 속에 빛났던 그 많은 영웅호걸, 현자, 성인, 철학자, 미인들,
그 명멸하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들도 죽음을 맞이했을 때 비로소 사슴뿔을 발견했을까.

어쩌면 그들은 우둔한 나와는 달리, 처음부터 사슴뿔을 키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겸손함과 선량함으로, 낮을 대로 낮아져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진정한 영혼의 눈을 가졌기에,
인류 속에 빛난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도 나는 묵주 알을 넘기며
"주여 저를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나이다.
제 뿔을 거두어 주소서!" 하며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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