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이 땅의 마지막 비경
거문도 등대에서 바라본 오후 햇살 속의 고기잡이.
아침 7시 30분. 여수항에서 거문도행 첫배에 오르자 해무에 잠긴 희미한 섬자락 너머로 싯붉은 아침해가 솟아오른다. 섬에 가려고 이렇게 첫배를 탄 것도 처음일 뿐더러 선상에서 아침해를 보는 것도 난생 처음이다.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약 115킬로미터, 뱃길로 1시간 50분이 걸리는 먼 섬이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쯤에 자리한 섬. 거문도로 가는 동안 나는 내내 다도해 풍경을 구경하느라 눈이 시릴 지경이다. 거의 2시간의 눈시림을 견디고 도착한 거문도에서 나는 한번 더 눈 시린 경험을 자초했다. 선착장에 내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할 말미도 없이 낚시꾼을 실어나르는 어선을 얻어탄 것이다.
서도리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선착장이 들어선 고도와 섬을 둘러싼 바다 풍경.
어선은 약 1시간에 걸쳐 거문도의 비경을 파노라마처럼 내게 보여주었다. 안노루섬과 오리섬, 거문도 등대와 관백정, 보로봉, 신선암, 기와집 몰랑, 둥글섬을 돌아오는 이 코스는 해안 절경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기막힌 비경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기와집 몰랑’(‘몰랭이’ 또는 ‘몰랑’은 ‘정상부’나 ‘지붕’을 뜻함)은 배를 타고 바다쪽에서 바라보아야만 기와지붕 모양의 암봉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선장님의 배려로 안노루섬에 모셔진 ‘고두리 영감’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전해져 온다.
오랜 옛날 거문도에 흉어가 들어 풍어제를 지냈더니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며 파도에 둥둥 바위가 떠내려왔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은 그 바위가 용왕이 보낸 것으로 여겨 이것을 안노루섬에 모셨더니 그 해 고등어가 많이 잡혔다는 것이다. 해서 마을 사람들은 이 돌이 고등어를 부른다 하여 고두리(고등어) 영감이라 부르며, 해마다 풍어제를 올리고 있다. 고두리 영감제는 현재 거문도 전체의 축제로 자리잡았으며, 사람들은 이날 그 유명한 ‘거문도 뱃노래’를 부르며 매구굿놀이(풍물놀이)도 즐긴다.
거문도 등대 가는 길에 바라본 옥가루가 섞인 듯한 거문도 바다 풍경.
태풍의 길목에 자리한 탓에 거문도의 섬마을은 온통 돌담 투성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서도리 돌담은 뭍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높고도 두터워 마치 성곽을 보는 듯하다. 마치 이런 모습은 제주도와도 흡사한데, 제주의 돌담과 이 곳의 돌담이 다른 점은 바로 돌담의 축조방식에 있다. 제주의 돌담이 폭이 좁으면서도 구멍이 숭숭하게 쌓았다면, 이 곳에서는 구들장처럼 얇은 돌널을 채곡채곡 촘촘하고 폭넓게 쌓아올려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었다. 집이며 밭가에 세운 농막도 돌로 쌓은 벽체가 흔하다.
거문도 선착장에서 만난 방파제의 갈매기.
서도리 장촌에서 만난 김태심 씨(70)에 따르면, 요즘이 한창 문어철이라고 한다. “잇갑(미끼)으로 고등어를 이래 통발에 넣어 노코 끌어올리면 문애(문어)가 그래 많이 잽혀.” 섬에서는 누구나 비릿한 삶을 살아야 한다. 바다도 비리고, 바다에서 건져올린 날것들도 비리고, 그것을 먹는 사람조차 비릿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이 비릿하다고 코를 막는 이가 없다. 여기서는 비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도리는 그 비릿함이 가장 진하게 풍기는 곳이다.
서도리 장촌 김태심 씨가 문어통발을 손보고 있다.
요즘 거문도에서는 삼치와 꽁치, 아귀와 숭어도 꽤 많이 잡힌다. 특히 삼치와 꽁치는 이 곳에서 주로 겨울(11월~2월)에 잡히는 고기라고 한다. 거문도에서 가장 유명한 특산물은 갈치라 할 수 있는데, 갈치는 5월부터 11월까지가 제철이다. 그러나 지금도 거문도 곳곳에서는 이 때 잡은 갈치를 냉동해 놓았다가 볕에 내놓고 말리는 집이 많다. 말린 갈치는 겨우내 조림을 해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서도리 변촌마을과 덕촌리 앞에서는 해녀도 만날 수 있다. 거문도 전체에는 약 10여 명의 해녀가 있는데, 이들은 주로 해삼과 전복을 따서 생계를 유지한다.
거문도 등대 가는 길, 동백터널에 떨어진 아름다운 동백무덤.
거문도를 이야기할 때 거문도 등대를 빼놓을 수 없다. 동양 최대의 등대로 알려진 거문도 등대는 일제 때인 1906년 생겨났으며, 가장 큰 프리즘 렌즈를 자랑한다. 이 등대의 또 다른 매력은 한 장소(관백정)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고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등대에는 3명의 등대지기가 3교대로 근무하고 있는데, 가장 젊은 등대지기인 조상훈 씨(32)는 과거 이 곳의 등대지기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보기 드문 내력을 지니고 있다.
저마다 최대라고 하는 동백 군락지도 거문도 동백밀림에는 미치지 못한다.
등대 주변은 동백나무 밀림이 펼쳐져 있고, 동백이슬을 먹고 산다는 동박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거문도는 고도와 서도와 동도, 세 개의 섬이 모두 동백밀림에 덮여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수 오동도의 동백은 여기에 비하면 차라리 초라할 정도이다. 동백이 만개할 무렵 거문도를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아마도 섬 전체가 붉은 동백꽃으로 덮여 눈이 부실 것이다. 거문도의 기후는 아열대성이어서 동백나무를 비롯한 후박나무, 박달목서, 돈나무, 까마귀쪽나무 등 난대성 수종이 식생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 거문도에는 풍란도 폭넓게 분포했지만,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현재는 일부 지역에만 자생하고 있다.
거문도 등대에 자리한 등대지기 숙소와 등대 부속건물.
거문도의 세 개 섬 중에는 거문리가 있는 고도가 중심지 노릇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대 열강들과 뒤엉킨 역사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국군 묘지다. 이 묘지는 1885년부터 1887년까지 2년 동안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했을 당시에 사망한 수병 9명의 무덤이다. ‘거문도 사건’으로 알려진 당시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1885년 4월 3척의 군함을 보냄으로써 시작되었고, 이후 조선 조정의 계속된 철수 요구로 1887년 철수했다. 임진왜란 때에도 고도는 왜병이 침략해 이순신 장군이 이를 무찌른 적이 있으며, 영국군이 물러간 뒤에도 일본인들이 이 곳에 진을 치고 어업활동을 벌였다. 하여 지금도 고도에는 일본식 건물이 몇 채 남아 있으며, 신사터까지 남아 있다.
생선을 말리는 채반을 이 곳에서는 '딱거리'라 부른다. '딱 건다'고 딱거리다.
본래 거문도는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삼도라 불려왔으나, 거문도 사건 당시 섬 사람들의 문장에 감탄한 청나라 제독이 조정에 청하여 거문도(巨文島)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오늘날 거문도는 천상의 풍경을 숨기고 있는 백도와 더불어 한국의 마지막 비경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거문도의 매력은 아름다운 풍경에만 있지 않다. 삶의 애환이 서린 돌담과 마을신앙이 깃든 당집과 해녀와 풍어제와 뱃노래와 동백밀림과 100년 된 등대와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따뜻한 기운이 있어 거문도는 더욱 매력적인 섬이다.
* 글/사진: 이용한
<여행정보>
여수에 가려면 호남고속도로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바꿔탄 뒤, 순천 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17번 국도를 타고 가면 된다. 여수항(061-663-0116)에서는 하루 네 번(07:10, 08:00, 14:20, 14:50) 배가 운항하며, 요금은 26200~28650원. 문의: 거문도관광여행사 061-665-4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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