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화

그대 잠든 시간에/이 외수 ...연작시

조용한ㅁ 2009. 1. 15. 15:53

아시나요
시간이 정지해 버린
다목리

무릎까지 빠지는 적설량으로
차오르는 이름들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싶어도
모두들
듣지 못할 거리에서
살아갑니다

아시나요
날마다 내게서 버림받은
낱말들은
모두 하늘로 가서

겨울밤
그대 잠든 머리맡
새도록 함박눈으로 쌓입니다






 

李外秀·1

그가 왔다. 비를 맞으며
신문지처럼 접혀서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배추흰나비가 보고 싶어
그가 말했다.
문을 열자
옥양목 빨래 같은 그의 영혼이
서늘하게
가슴을 지나갔다.

 

 


李外秀·5

밥이 보다 요긴했던 시대
밥 때문에 상처받던 시대
사랑도 밥 앞에서는
맥 못 쓰던
그런 날에도.
흰 쌀밥으로만 보이던
원고지 빈 칸
뜯어먹으며 쓴 말
  - 밤마다 푸른 잉크로
    살아온 날만큼
    사랑이라 적으면
    눈시울 젖은 채로 죽고 싶어라

 


李外秀·8

어느 날은 속삭이듯
배꽃나무 그늘로
스미고 싶다던 그대여.
스며 그에게로
가닿을 수 있다면.
터진 꽃망울의 속살로
피어날 수 있다면.
한 꽃나무에서 다른 꽃나무로
흐를 수만 있다면

 


李外秀·10

샘밭에 가면 쓸쓸하다.
빨래처럼 걸린
그의 영혼이
달빛에도 젖지 않고
펄럭인다.
청명한 개구리 소리만
휘파람처럼
떠 있다.


李外秀·11

벽에 검둥산 하나
그려넣고
밤마다 入山하는 그대를
적멸이라 부르랴.


李外秀·12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뜨고요
영혼들만
새벽 안개등으로 빛나는 날
샘밭에 가면
강물처럼 흐르는 축축한
혼들의 행렬이 보이지요
안개는 슬픈 사람들의 넋이야
배추밭 뚝에서 젖은 채
흐느끼는 그대를
만나는 날이 많았습니다.

李外秀·35

허공에 새 한 마리
그려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너무 쓸쓸하여
점 하나를 찍노니
세상 사는 이치가
한 점 안에 있구나.

 

李外秀·39

안개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다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젖은 기적 소리가
멀리서 왔다.

 

李外秀·48

겨울 강바람이
산발치로
산길 몇 개를 틀어올리면.
사람이 그리워
내려오는
산길로 들자.
무엇을 더 끊어야 하리.
세상 밖에 나와서
세상을 보는
저 깊은
적멸.

 

李外秀·51

오늘은 먹을 갈다가
맑은 달 하나
건졌습니다.
젖어 창호지에
걸었드니
지나가는 새가
발목을 적시고
갑니다.









작성날짜:2007-11-21 오전 4:2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