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길상호
마음이 가난한 나는
빗방울에도 텅텅텅 속을 들키고 마는 나는
뭐라도 하나 얻어 보려고
계절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 앉아
기워 만든 넝마를 뒤집어쓰고 앉아
부끄러운 손 벌리고 있던 것인데
깜짝 잠이 든 사이
아무 기척도 없이 다가와 너는
깡통 가득 동그란 꽃잎을 던져 넣고 갔더라
보지도 못한 얼굴이 자꾸 떠올라
심장이 탕탕탕 망치질하는 봄
깡통처럼 찌그러든 얼굴을 펼 수 없는 봄
-시작노트-
봄비가 지나간 거리는 꽃잎들로 가득하다. 누군가 내 가난한 발길 앞에 놓아두고 간 동전 같아서 무릎 꿇고 꽃잎 하나를 주워든다. 나는 무엇을 채우며 살고 있을까? 꽃잎을 가슴 속에 던지며 터엉-빈 소리만 오래도록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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