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덕유산의 추억 鄭木日

조용한ㅁ 2009. 10. 14. 11:26

덕유산의 추억

산중에 있을 때는 알지 못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달빛도 말이 아니었을까.
한밤중 마당과 대청에 가라앉아 있던 그 때의 달빛은
무슨 말들을 펼쳐 놓았을까.
산중에 무심히 보던 그 달빛의 한 자락이 마음에 흘러와
슬쩍 말머리를 꺼낸다.
가장 고요한 데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만나러 가마.
가장 외로운 곳으로, 가장 깊은 곳으로
마음의 근심을 지우는 손수건을 가지고 가마.
그래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흐느끼는 네 영혼을 어루만져 주마.
부드러운 말씀은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마.

소나무 숲바닥에 흩어진 갈비 위에 내려와 있던 달빛,
농가의 댓돌 위 농부의 고무신 안에
살며시 들어와 있던 달빛에게---.
당신은 영감(靈感)의 긴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그 머리카락 한 올마다 세상을 적시는 노래를
몰래 빗질하고 있는 것인가.
시(時), 공간을 뛰어넘은 언어,
바라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통하는 대화법을 어떻게 깨달을 수는 없을까.
십 년 전에 산중에서 보았던 그 때의 달빛은 물러나지 않고,
내 마음의 언저리에 아직도 남아 말이 돼 주곤 한다.

가장 낮은 데로, 드러나지 않은 데로 찾아가마.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언어.
우주 공간에서 별들과 대화하여 얻은 별빛 언어…….
마음의 구석구석에 이는 상념까지도 그 언어로 반짝거리게 하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얘기가 그리운 이를 찾아가마.

달빛에게 마음으로 말하곤 한다.
고요를 더 고요롭게 만들면,
외롬을 더 외롭게 만들면 종내는 어떻게 되는가.
굳게 닫힌 곳으로, 어둠 속에 막혀 있는 곳으로,
얼어붙어 온기조차 없는 곳으로 찾아가마.
말문을 닫고 있는 너에게로. 그대의 이마를 짚어 주고,
찬 손을 잡아 주마. 그러면 닫힌 문이 열리고,
얼어붙은 마음이 풀리는 말이 생각나리라.
풀내 나는 곳으로, 흙내 나는 곳으로 가마.
풀벌레 소리가 가득 찬 데로,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있는 이의 방으로.
한 번쯤 눈을 돌려 밤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이들을 만나러 가마.
말없이 그냥 머물러 있다가 와도
나의 언어는 풀잎에 맺힌 이슬로 풀밭을 적시고 대지에 입맞추리라.

십 년 전에 젖었던 달빛이
덕유산 계곡을 흘러 내리는 물소리처럼 내 마음을 적신다.
달빛도 산중에서 보던 달빛과 도시에서 보는 달빛은
분명히 다른 데가 있는 것일까.
달밤이면 예전에 만났던 덕유산 달빛을 생각하고
그 달빛 속으로 달려간다.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산중 달빛이
아직도 머물고 있는 것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다행한 일이다.

가장 높은 데로, 가장 먼 곳으로 떠오르마.
가장 낮은 데로부터 말없이 하늘로 떠오르마.
너의 생각, 한숨을 하늘까지 가지고 가마.
가장 간절하면 오히려 무관심해지는 법을 알게 하리라.
덕유산 달빛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쌓여 있다.
그 달빛은 마음의 어둠을 지우는 순금의 언어.
그 달빛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달빛의 맑은 도취 속에 빠지곤 한다.

<글 : 鄭木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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