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2009 시흥시 문학상

조용한ㅁ 2010. 1. 1. 13:07

대상

 

  / 이종섶

 

  오래 쓰면 쓸수록 뾰족한 그곳이 둥그런 엉덩이처럼 변해가는 삽, 처음부터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삽날은 흙을 갈아엎고 퍼 나르는 동안 닳고 닳아 유순하게 변화되기까지 수없는 세월을 홀로 울며 견뎌야 했다

 

   조금씩 추해지는 표정을 감추려고 찬물로 세수하는 것도 잠시뿐, 쓰레받기로나 쓰이는 늘그막이 되어서야 위협적인 꼭지 부드럽게 깎여 거름더미라도 한 짐 푸짐하게 퍼주고 싶은 착하디착한 곡선으로 변한 것이다

 

   땅을 파면 팔수록 산봉우리 닮아가고 모래를 뜨면 뜰수록 물의 흐름 배워가는 삽 한 자루의 성실한 노동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싶은 날, 평생 맞서기만 하던 땅위에 서서 일방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사과라도 하듯 자근자근 눌러보는 삽날의 애교

 

   나의 노년도 저랬으면 좋겠다 싶어 몇 군데 짚이는 곳을 슬며시 만져보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 남을 찌르며 살아야했던 아픔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괴로운 밤 땅을 파기 위해 삽질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땅을 파야했던 삽 한 자루의 수행이 떠오른다

 

   땅은 삽날을 갈아내기 위한 숫돌이었을까 강할수록 부드러운 숫돌을 사용해야 한다며 꼬리뼈의 흔적조차 완전히 없애버린 그곳을 내놓고 다니는 짐승 한 마리, 모든 것을 달관한 자세 하나 얻기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도 사나운 포효도 다 버렸다

 

 
금상
 

   키쓰는 무장무장 나리고  / 정명                     

 

 

   그럽디다 차말로. 어느 시인의 말맨치로, 함박눈이 오믄 우새시럽게도 이웃집 남자가 그립습디다. 아 금메, 그 남자 첫사랑을 탁해가꼬.

   긍게 거시기, 그 삼월도 요러크름 눈이 내렸는디, 밤하늘은 아조아조 꺼매서 눈송이는 메밀꽃맹키 빛나등만. 다방 갈 돈도 없는 우리는 뿌담시 동네를 멫 바쿠나 돌았당께요. 그 머시메가 손목 끌고 간 어느 골목길, 배람박에 뽀짝 붙어가꼬 대뜸 이럽디다. 키쓰해 주까. 오메, 낯바닥이 뜨겁고 심장이 통개통개, 난 그만 쫌더 크먼이라고. 내빼부렀제. 뽀뽀도 아니고 숭허게. 그라고 키쓰가 무신 동냥이간디, 낭만적 사랑과 사회*만 알았어도 그짝을 가만 놔두덜 않제. 나가 먼첨 프렌치 키쓰를 퍼부숴줬을 거인디, 짚이짚이 들척지근허니. 그려도 그렇지. 그 놈은, 바보 겉은 그 놈은, 사랑도 짜잔허게 허락받아 허는가벼어. 영산강 하구언둑에서 암시랑토 안허게 들어가지 말라고 붙잡던 보짱은 거시기였당가. 포도시 짱구이마에 차디찬 뽀뽀를 허고 보듬아준 그 놈, 주머닛돈 오백원으로 포장마차에서 홍합 멀국을 홀짝이고 홀짝이다……. 집 앞 골목꺼정 왔는디, 땡땡 언 내 손을 잡고 애문 눈길만 푹푹 파제낍디다. 워째야쓰까, 솔찬히 커부렀는디, 입태꺼정 지대로 된 키쓰맛을 몰르는 나는, 오늘맹키로 눈이 오는 날이믄 맬겁시 스무 살이 그리워 눈물납디다. 순전히 고놈의 눈 땜시 애간장 녹습디다.

   키쓰는 폭설맹키 와야 허는 벱이지라우, 아먼.

   시방 못다 한 키쓰맨치로 눈은 나리고

   무장무장 눈치 없이 나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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