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삼킬 수 없는 것들 / 나희덕

조용한ㅁ 2010. 4. 11. 10:30

 

 




      삼킬 수 없는 것들 / 나희덕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자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 여러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 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스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 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