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고백 - 구상 -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이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무엇보다도 두려워서였다.
나의 한 치 마음 안에
천 길 벼랑처럼 드리운 수렁
그 바닥에 꿈틀거리는
흉물 같은 내 마음을
나는 마치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눈을 감거나 돌리고 살아왔다.
실상 나의 知覺만으로도
내가 외면으로 지녀 온
양심, 인정, 명분, 협동이나
보험에나 들듯한 신앙생활도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나는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저런 추악망측한 나의 참 모습과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하느님,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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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는 죽음에 임하게 되면 한평생 자신이 저지를 죄를
뿌리채 사제에게 고백하고 참회를 한다.
이 일생일대의 신앙고백이 바로 임종고백이다.
한때 가톨릭 사제를 꿈꾸었던 구상시인은
특이하게도 대학의 종교학과에서 불교를 전공한다.
신앙의 뿌리는 가톨릭에 두고 있지만 그는
생전에 걸레스님 "중광" 과의 친분이 두터웠다.
10년전 열반한 성철 큰 스님.
1993년 어느 늦가을 새벽 성철스님은 해인사 퇴설당에서
상좌들을 부른뒤 "때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다음 일필휘지로 다음과 같은 임종계를 써내려 갔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치고 기어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일생동안 세상사람들을 속였다고 말하면서 열반에 든 성철스님과
한 평생 내가 나를 속였다고 미리 임종고백을 해둔 구상시인!
큰 인물들의 고백은 살아있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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