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신현림

조용한ㅁ 2010. 9. 25. 06:10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자화상/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시집『세기말 블루스』(창작과비평사, 1996)

 

 

 

 

이별한 자가 아는 진실/신현림

 

 

 

담배불을 끄듯 너를 꺼버릴 거야


다 마시고 난 맥주 캔처럼 나를 구겨버렸듯
너를 벗고 말 거야
그만, 너를 잊는다, 고 다짐해도
북소리처럼 너는 다시 쿵쿵 울린다

 

오랜 상처를 회복하는 데 십년 걸렸는데
너를 뛰어넘는 건 얼마 걸릴까
그래, 너는 나의 휴일이었고
희망의 트럼펫이었다
지독한 사랑에 나를 걸었다
뭐든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네 생각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어디에나 있었다 해질녘 풍경과 비와 눈보라,
바라보는 곳곳마다 귀신처럼 일렁거렸다
온몸 휘감던 칡넝쿨의 사랑
그래, 널 여태 집착한 거야


사랑했다는 진실이 공허히 느껴질 때
너를 버리고 나는 다시 시작할 거야

 

 


서정윤엮음『견딜수없는 사랑은 견디지마라』(이가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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