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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바다 성산포

조용한ㅁ 2010. 9. 23. 01:52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시 이생진, 노래 윤설희


      그리운 바다 성산포 아침 여섯시.. 어느 동쪽에나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피운다 태양은 수만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생명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 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귀를 찢기었다 그래도 할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에 세상 하고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어진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 감으면 보일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치 않는 진주로 살거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혼자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그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때늦은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 주었다 365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또 기다리는 사람..... - 이생진 시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