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김환기 회고展]
무수한 점으로 鄕愁 달래… 전시 관람한 둘째딸 금자씨
"남들은 좋다고 감탄하지만 점 찍느라 목디스크까지… 아버지 생각에 눈물만 나요"
"뉴욕에 오니 낮에는 햇빛이 아까워 붓을 안 들 수가 없고, 밤엔 전깃불이 아까워 그림을 안 그릴 수가 없다."
록펠러Ⅲ 재단의 지원으로 뉴욕 생활을 막 시작한 1963년, 하루 16시간씩 붓을 들었던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1913~1974)는 당시 27세였던 둘째딸 금자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천재적이며, 다작(3000여점)했으며,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해체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김환기 회고전이 6일부터 2월 26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신관에서 열린다.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에 나온 작품은 모두 65점. '귀로'(1950년대) 등 1950~1960년대의 미공개작 4점도 처음 소개된다.
◇특유의 푸른색과 백자 항아리의 등장: 두 번의 서울시대와 파리시대
전남 신안서 태어나 니혼대학 미술학부에서 추상미술을 배운 김환기는 1937년 귀국, '신사실파'를 결성해 한국적 미감을 추구한다. 전시작 '피난열차'(1951)는 초기 서울시대(1937~1956)를 대표하는 작품. 김환기는 콩나물시루처럼 피란민을 실은 열차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그려냈다.
김환기 그림의 주조를 이루는 특유의 푸른색은 파리 유학시절(1956~ 1959)에 등장한다. 푸른색은 하늘과 동해를 상징하는 빛깔. 조선 백자를 열성적으로 수집했던 김환기가 백자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푸른 하늘과 달을 배경으로 백자 항아리 두 점을 그려넣은 '항아리'(1955~1956) 등이 전시에 나왔다. 1959년 다시 귀국한 김환기는 한국의 자연을 추상화해 그리기 시작한다. 뉴욕 시대를 예감케 하는 두 번째 서울시대(1959~1963)의 작품으로 '달과 매화와 새'(1959)가 소개됐다.
◇뻐꾸기 소리를 그리며 점을 찍다: 뉴욕시대와 전면점화
"친구의 편지에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1970년 6월 23일 일기)
뉴욕의 김환기는 화면에 무수한 점을 찍고 이를 사각형으로 에워싸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김환기 말년 화풍을 대표하는 전면점화(全面點畵)의 탄생이다.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수상작인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작가가 뉴욕 생활을 시작해 뇌출혈로 세상을 뜨기까지인 뉴욕시대(1963~1974)의 그림이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착안한 이 작품에서 김환기는 가로 172㎝, 세로 232㎝의 대형 캔버스를 점이 찍힌 푸른 사각형으로 가득 메웠다. 수많은 점들은 하늘의 별, 혹은 사람들 사이의 인연을 상징한다. 전시회에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비롯해 '10만개의 점'(1973), 1970년대의 '무제' 시리즈 등 김환기 뉴욕시대의 대형 전면점화 10여점이 나왔다.
둘째딸 금자씨는 "아버지는 조수도 없이 저 점들을 찍느라 목디스크에 걸렸다. 다른 사람들은 저 작품을 보며 감탄하겠지만,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회장님'들 설득 또 설득… 인맥으로 작품 65점 빌려
"소장자들에게 '전시회를 열려고 하니 작품 좀 빌려달라'고 전화를 걸면 비서가 대신 받아 '회장님 자리에 안 계신다'고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까스로 소장자에게 접촉하면 '안방에 있는 그림을 어떻게 떼 오느냐'며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명자(69) 갤러리현대 회장은 "이번 전시회를 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지 모른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회고전의 성패는 작품 소장자를 설득해 얼마나 작품을 빌려오느냐가 좌우한다. 갤러리현대는 이번 회고전에 나온 65점 모두를 빌려왔다. 이 화랑이 확보·관리하고 있는 인맥의 힘을 보여주는 전시인 셈이다.
관람료 일반 5000원, 초중고생 및 65세 이상 노인 3000원. (02) 228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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