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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그림들/한국의화가 작품

김환기

갤러리 현대에서 지난 6일부터 2월 26일까지 김환기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박수근전이나 장욱진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기에 이번 전시 역시 큰 기대를 갖고 찾게 되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전시회. 이번 전시는 수화 김환기의 대표작 65점이 전시되었는데 모든 작품이 외부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하니 미술관 측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수화 김환기(1913-1974)는 우리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회화에서 추상회화로 끊임없이 자기발전과 해체를 이루어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피카소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화가이다. 피카소가 장밋빛시대, 청색시대를 거쳐 사실적인 그림에서 큐비즘이라는 추상화의 세계로 혁명적 발전을 이루었듯이 김환기 화백도 우리네 향토 정서가 담긴 작품에서 일명 점화로 불리는 추상회화로 말년에 이르러 큰 변혁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림의 형식은 큰 변화가 있었으나 나는 김환기 화백의 그림 전체에 여전히 우리네 정서가 짙게 베어 있음을 느꼈다. 국적이 드러나지 않는 추상화라는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릴적부터 내가 보고 느껴온 것과 같은 낯설지 않은 친숙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환기 화백의 자화상

 

수화 김환기는 쪽빛 바다가 아름다운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니혼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여 작품활동을 하던 김환기 화백은 수필가였던 부인 김향안과 함께 파리 유학길에 올라 1959년 귀국, 우리 풍광을 추상화한 작품들을 그려내다가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말년에 이르러 수없이 많은 점으로 정서를 표현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를 전면점화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서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초기 서울시대, 파리에서 귀국한 후의 서울시대, 그리고 말년의 뉴욕시대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초기 서울시대의 작품. 피난열차. 황토빛의 땅과 쪽빛의 하늘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까만 열차에 콩나물 시루처럼 빡빡히 들어찬 사람들의 머리, 그리고 민중이 입은 흰 옷이 우리 민족의 아픔을 드러내는 듯하다. 애잔한과 서정성이 느껴지는 작품.

 

프랑스 유학을 마친 후, 김환기 화백은 우리 자연물을 추상화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유난히 사슴이 많이 등장하는데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푸른빛의 조화가 이루어진 이 그림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이 그림 속 사슴은 생명을, 둥근 원은 만물에 대한 포용을 나타낸다고 한다. 가을의 쪽빛 하늘. 남해의 에메랄드빛 바다. 우리 마음 속 가득한 파란 희망..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떠오르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달밤의 화실. 이 작품을 보고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이 떠올랐다. 이젤에 놓인 화폭을 표현한 두 화가의 방식은 너무나 다르다. 마그리트의 작품이 도발적이고 파격적이라면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보여주는 따스함이 담겨 있다. 우리의 전통문양과 소나무가 그려진 화폭 아래에 소박한 백자가 이고 밝은 파랑과 하늘색으로 채색된 실내는 차가운 느낌을 주어야 하지만 왠지 모를 따스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영원의 노래. 사슴, 봉황, 바위, 구름과 같은 우리 자연물의 상징. 우리의 전통문화를 의미하는듯한 도자기. 고고한 절개를 표상하는 매화. 한국의 전통을 이렇게 표상화할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를 표제로 그린 그림으로 한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인과 절친한 사이였던 김환기 화백은 뉴욕 생활에서 겪는 생활고와 외로움을 이 시를 읽으며 한 폭의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수없이 많은 별, 수없이 많은 사람들... 하나하나의 개체지만 우리 모두는 어찌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하나 하나의 점은 독립적 개체이지만 점의 번짐을 통해 점을 둘러싼 작은 네모의 미세한 마주침을 통해 우리는 관계의 미묘한 본질을 느끼게 된다. 한없이 추상적인 점화지만 수묵화를 연상케하는 번짐의 효과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관통하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한 편의 시를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인간의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는 주제에 밑줄을 치라는 식의 시 감상에서는 절대 깨달을 수 없는 시의 내재적 의미가 한 폭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주. 인간의 삼라만상이 담겨있는 우주의 질서를 둥근 원으로 표상한 듯한 작품이다. 회오리처럼 얽혀 있는 수많은 점과 점을 둘러싼 흰 네모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 하나의 점을 찍다가 끝내 목디스크까지 얻었다는 화가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의 순환을 이어가는 우주의 원리는 우리네 삶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제 23-07-71. 단층을 연상하게 하는 색점으로 이어진 작품. 노랑, 빨강, 파랑 등 다채로운 색점이 다양성과 조화로 가득찬 우리 세상을 나타내는 듯 하다.

 

무제-19-06-71. 그 웅장함에 눈을 뗄 수 없었던 작품. 반원형으로 이어진 수많은 점들의 질서가 나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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