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글/수필.기타

열 번째 무사이 - 사포(Sappho)

출처 : 미술관 옆 도서관


Charles Gleyre, Le Coucher de Sappho

여성의 동성애에 대해서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스의 모든 도시 국가에서 그랬듯이 스파르타에서도 동성애는 허물이 아니었다.명망있는 부인이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여성의 동성애는 원래 레스보스 섬(Lesbos Island) 풍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성애에 탐닉하는 여성들을 '레즈비언(Lesbian)' 즉 '레스보스 섬 여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때문이었다. 그리스의 에게 해 동부, 터키 해안 가까이에 있는 이 섬은 위대한 여류 시인 사포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포도 레즈비언 혐의를 받고 있다.
'레즈비언'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트리바스'는 동사 '트리보'에서 온 말이다. '문지르다(rub)'라는 뜻이다.



사포는 기원전 7세기에 활약하던 시인이다. 작품 중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 시인의 시적 재능을 엿보기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플라톤은 사포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무사이(뮤즈들)은 모두 해서 아홉이라고 하는데 혹자는 아니란다.
열 번째가 있단다. 보라, 레스보스 여성 사포를"


Pierre Oliver Joseph Coomans - Sappho at Mitylene

'열 번째 무우사(뮤즈)'로 극찬받았던 시인 사포는 시에다 썼듯이 무우사들을 연상시키는 처녀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사포는 여성이었다. 더구나 레스보스 섬 출신 여성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레스보스 섬 사투리인 '프사포'로 불러줄 것을 원할 정도로 레스보스 섬을 사랑했다. 게다가 그는 다른 여성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사포의 주위에는 시를 배우려는 여성, 음악을 배우려는 여성들이 들끓었다. 남성들이 사포를 '레스보스 섬 여자'로 보려 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포가 '레스보스 섬 여자'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Martin Drolling (1752-1817),
Sappho et Phaon Chantant Leurs Amours Dans Une Grotte(Sappho and Phaon Singing Their Loves In A Cave)

사포는, 처녀들을 육체적으로 사랑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지위가 열악했던 그들을 계몽하려 했던 것 같다. 남성들이 사포를 비난한 것은 당연하다. 남성들이 비난한 것은 사포가 드러내었을 가능성이 있는 충동적인 성적 욕망이 아니었다. 남성들은 오히려, 인간 본성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여성을 가정의 속박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포의 의도를 두려워했다. 남성은 이로써 남성을 지키고자 했다. 사포는 여성 동성애꾼이었다기 보다는 최초로 여성 해방 운동을 시도한 고대의 여성 같다.


David, Jacques-Louis, Sappho and Phaon, 1809

사포는 파온이라는 미남 청년을 열렬히 사랑했으나 결국 이 청년의 마음을 얻지 못해 레우카디아의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도 남성들에 의해 조작된 전설이기 쉽다. 남성들은, 사포가 맞은 최후의 자리에나마 남성을 세워두고 싶었는지 모른다.


Kanoldt Edmund Friedrich - Sappho Am Vorgebrige Leukate

사포가 '레스보스 섬 여자'였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써 사포를 비난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사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여성인 사포가 여성에게서 '잃어버린 반쪽이'를 찾으려 했다는 전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를 비난하자면 아폴론을 한 번 떠올려본 뒤에 비난해야 한다. 아폴론은 詩의 신이었다. 음악의 신이었다. 사포 역시 시인이었다. 음악가였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더 아름답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범하지 못할 법칙은 없는 것이다.


Charles Auguest Mengin, Sappho
 
-무사이-

 

이윤기 저,<그리스 로마 신화> 中

무사(고대 그리스어: Μουσα, 복수 Μουσαι 무사이) 또는 영어로 뮤즈(영어: Muse)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이다.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에 영감을 주고 무사이 여신 자신들을 통해서 공연과 창조의 과정을 생각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본래는 그 수가 세 명이었으나 일곱 명으로 늘어나서 후에는 시인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서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명의 여신들로 생각되었다. 출생에 대해서 다른 문헌에서는 우라노스가이아의 딸, 혹은 하르모니아의 딸이라고도 한다. 각각이 담당하는 학예의 분야는 로마 시대 후기에 확립되었다. 파르나소스 산과 헬리콘산이 무사이 여신들의 거처였으며, 학예의 신 아폴로가 그들의 선도자가 되었다. 특히 헬리콘산에는 말의 샘이라는 뜻의 히포크레네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은 무사들이 아테나로부터 선물 받은 페가소스가 걷어찬 땅에서 솟았다고 한다. 무사이 여신들은 올림포스 산에서 연회가 열릴 때마다 아폴론이 연주하는 수금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무사들은 아폴로마르시아스의 시합의 심판관이 되어주기도 하였는데,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내며 자만하던 타미리스와 겨루어 이기자 그 대가로 그의 눈을 멀게 하고 노래 실력을 빼앗아 버렸다. 또, 무사 중 하나인 칼리오페의 아들 오르페우스가 몸이 찢겨 죽자 그의 몸 조각들을 모아 레이베트라에 묻어주고 그의 리라를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스의 여러 고대 서사시에서 무사들은 이야기의 발단을 노래하거나 화자가 되어 작품의 서술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가령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노래하라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여기에서 여신(고대 그리스어: θεά, Thea)은 무사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