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제가 곧 잘 가방속에 넣고 다니는 정채봉 엣세이 "눈을 감고 보는 길"에 있는 글입니다. 그는 간암 판정을 받고 입원중에 아래와 같은 글을 적었는데, 그 글을 따라 제 나름대로 그림과 음악을 넣어 편집해보았습니다.*
첫 번 눈을 어슴푸레 떴을 때는 둘러선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러고들 "성공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며 -중략-
새벽녘이었다. 간호사와 의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후 문이 그쪽에 있는 줄을 몰랐는데 오른편에서 외마디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이내 통곡 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차단되어 버렸다. 나는 미루어 짐작했다. 우리 가운데의 누군가가 조금 전에 숨을 멈추어 버린 것이로구나. 가족들이 밖으로 나오는 침대를 붙드고 오열한 것이로구나. '안 돼' 하고 막아섰는데도 떠나 버리고 마는구나. 죽음은 정말 그 어떤 인간의 명령과 사정도 들어주지 않는 것이로구나를. 나는 마우스피스를 제거하러 온 간호사에게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지요?" 간호사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금년 마지막 가는 밤이에요." 뭐라고? 금년 마지막 가는 밤이라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내일이 새해 첫 아침이라는 말인가. 나는 문득 지금까지의 현 나이를 지워 버리고 싶었다. 내일부터는 새 나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벽시계을 보았다. 11시55분. 간호사들과 당직 의사들이 텔레비젼이 있는 방으로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와아'하는 건강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보신각 종이 울리면서 새해 여명으로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리라. 나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새 나이를 얻었노라고, 나는 이제 새 나이 한 살이라고.
한 살 새 나이 한 살을 쉰 살 그루터기에서 올라오는 새순인 양 얻는다.
나는 침대로 돌아와서 탁자 위의 전깃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일기장 속에 넣어 가지고 온 달리의, 창 너머로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창가에 선 젊은 여인) 밑에 새벽을 맞는 오늘의 '나의 기도'를 적어 놓았습니다.
*새해 새날을 맞고 어느새 세번째 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위의 글 저자인 정채봉님 보다 한 살 위인 저는 아직 이렇게 멀쩡한데, 그는 이미 10여년전에 이 세상을 떠났지요. 이슬처럼 영롱하고 새 순 처럼 어여쁜 글들을 남기고..... 저는, 몇해전부터인가,새해가 되면 '나는 올해 365일 전부를 선물 받았을까?'하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모르긴 하지만, '그날'은 아무도 모르게 다가올것이고 저는 순하게 따라가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깨어 기도하고 있어라"는 말씀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매양 한눈 파느라 잊고지내기 일수이긴 하지만.... 여기 그의 시 한편을 더 옮겨 씁니다.*
**위 글은 2011년 벽두에 작성해서 카페(어둠속에 갇힌 불꽃)에 올렸던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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