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선가 꿈속에선가 / 릴케
어느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가
나 언제였던가 너를 만난 것이
지금 이 가을날을 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
그리고 너는 내 손을 쥐고 흐느끼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 때문에 우는가?
핏빛처럼 붉은 나뭇잎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리.
언제였던가 한 번은 네가 행복했기 때문이리라.
어느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가……
너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너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몰라,
내가 너에게 사과를 주었던 일을.
그리고 너의 금빛 머리카락을 조용히 빚겨 올리던 일을?
너는 아직도 알고 있는지 몰라, 그때는 내가 잘 웃어 때였던 것을.
그리고 너는 철없는 어린애였던 것을.
어느덧 나는 웃지 않게 되었다.
나의 가슴 속엔 젊은 희망과 묵은 슬픔이 불타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여선생이
너에게서 '베르테르'를 빼앗던 무렵이었다.
봄이 부르고 있었다. 내가 네 뺨에 입맞추자
네 눈은 크게 기쁨에 넘쳐 나를 쳐다보았다.
일요일이었다. 멀리 종소리가 울리고
숲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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