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小曲/황동규

조용한ㅁ 2014. 7. 20. 23:08

小曲 1

 

내가 처음으로 당신을 사랑하였을 때

나는 불 속을 걷는 것 같었읍니다.

 

바위 위에 하나의 금이 기어가듯 그렇게

가는 것 같었읍니다. 하나의 불길 속을.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조용함이었읍니다.

너무도 조용하여 내 것과 함께 당신 것도

잊고마는, 외로움도 없는 외로움에로 돌아오는,

맑고 환한 외로움에로......

내 처음으로 당신을 사랑하였을 때.

 

 

 

 

 

小曲 2

 

언젠가 강물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 속에

또 지나가는 구름을 발견했을 때처럼

나는 내 가까이에 머뭇대다가 나를 방향없이

지나가게 하는 그 황야로 벋치는 그림자와 같은

사랑을 당신에게서 느끼게 되었읍니다.

 

 

 

 

 

小曲 3

 

당신이 언제나 무한하였기 때문에

나는 끝있는 것이 되고 싶었읍니다.

 

선창에 배가 와 닿듯이

당신에 가까워지고

언제나 떠날 때가 오면

막막히 밀려나고 싶었읍니다.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바라고 있지 않은 것을.

창 밖에 문득 흩뿌리는 밤비처럼

남몰래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 것을.

 

 

 

 

 

小曲 4

 

그것은 첫 강설(降雪)이 있은 저녁, 저녁길을
걸어가며 항상 조용히 스치곤 하는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샌가 나는 몸부림을 잊고 있었구나.

 

언제까지나 나는 기다려야 하는가. 새들의

날개 뒤의 어두운 황혼, 그 황혼 속의

알맞은 돌아옴. 그때까지 내 당신을 잊지

않음. 혹은 막막한 잊어버림. 그 깊이를....

나는 들여다 본, 들여다 본다. 나는 꿈꾼다.

한 금제(禁制)있는 일생을, 한 불 밝힌
윤곽(
)을.

 

 

 

 

 

小曲 5

 

당신이 나에게 안도와 불안을 함께 주신 것은 나에게

기도가 있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혹 눈발이 드문드문

날리는 날 허전히 걸어갈 때에 그 의미는 마음 속에서

절박한 기쁨으로 바뀌어 오는 것이었읍니다. 눈 내리는

속에서 가까이 바알갛게 불 밝힌 창을 바라보는 것, 새벽녘

즐거운 꿈이 끝날 적쯤 해서 인마(人馬)의 소리가 들려

오는 것. 허나 다음에는 항상 떨리는 마음뿐이었읍니다.

그것이 노래가 끝난 후의 흔들리는 여음인지 혹은 새로운

노래를 위한 간절한 기다림인지는 나는 아직 알 수가 없읍니다.

 

 

 

 

 

小曲 6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것은 낯선 곳으로

이끄는 한 헐벗은 길과도 같은 것을. 그것은

새 하나 날지 않는 어느 겨울날 오후.

 

지금 벗은 나무들 뒤로 걸어가며 보는 하늘.

빈 나무가지들이 박힌 겨울 하늘. 어쩌면

지금까지 내 사랑해 온 것은 당신보다는 차라리

이 겨울 하늘의 캄캄한 고요함, 머릿속 깊은 곳의

막막한 기도, 이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小曲 7

 

나의 마지막이 당신의 마지막처럼 될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내 마음을 다스롭혀

온 일이었던가.

 

나의 마지막이 숲 속에서 잃어버린 길처럼

되든지, 어둠 속에 움직이는 바다와 같이

되든지......  그것은 모두 당신의 상태와도

같은 것이고, 그때 나도 꿈 꾸듯이 살아 있던

것의 기쁘고 슬픈 일들을 당신에게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小曲 8 

 

나의 이 기다림이 즐거운 약속과 같은

것으로 바뀌어 질 때, 몇번인가 연거퍼 보는

연극의 마지막 막과 같은 것으로 -

그것이 끝날 무렵 해서는 언제나 개선가 같은

것이 들려오곤 하였지마는 - 또 강 언덕에

며칠밤째 퍼붓는 눈보라와 같은 것으로

바뀌어 질 때, 나는 지나가리. 삼림속에

겨울이 지나가듯이 눈 쌓인 곳의

외로운 단란(團欒)과 같이 지나가 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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