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푸른 밤/나희덕

조용한ㅁ 2014. 9. 28. 00:19

 

 

 

                                                                                                                               < 畵:박용인, 푸른 누드>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나희덕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1997, 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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