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성과 지역성을 결합시킨 작품세계, 전혁림(1916 ~ 2010)의 그림
'통영' 캔버스에 유채 22 x 27cm 2006
'한려수도' 캔버스에 유채 145 x 112cm
봄꽃그림
통영의 운하교
한국의 환상
충무항
탈이있는정물
말과 여인들
한국의 자연
꽃수레
한려수도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가 구입한 구입한 전혁림 화가의 작품 '통영항', 길이 7m, 높이 2.8m의 유화
전혁림. 서양화가. 1933년 통영수산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38년 재야전인 부산미술전에 처음 출품했으며 2년 뒤 일본화단을 둘러보고 귀국했다. 그는 부산미술전(1938년)에 '신화적 해변', '월광(月光)' 등의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가기 시작하였다. 지방작가들의 흔한 보수적 성향에 비하여 드물게 그는 현대미술의 전위적(前衛的) 조형 방법으로서 전통을 표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때로는 실험의욕이 자기 영역의 확대를 시도하여 발랄한 생명감의 발산에 빠져든다. 그는 해방 후 감격과 좌절을 겪고 통영문화협회 창립 동인(1948)에 참여했다. 6.25 이후 부산에서의 유랑 생활을 거쳐 국전에 입선했다. 피난지 부산의 화단은 전혁림 화가의 토대를 굳혀주었다. 비록 지방성이란 특징이 있다하더라도 창작의 보고(寶庫) 노릇을 했다. 고향을 지키며 싱그러운 물빛을 안고 살아가는 지역작가로서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예술세계의 토대로 삼으며 꾸준한 제작생활을 하였다. 1950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등 1950년대에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회화 이외의 매체에도 관심을 보여 도예전·목조전을 열었다. 그는 반세기에 걸친 화력을 통해 추상과 구상의 경계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표현영역을 확대해왔다. 자유로운 구성과 형태, 향토성 짙은 색채의 초기 구상회화는 후기에 들어오면서 점차 추상화되었는데 단순화와 응집화를 통해 한국적 미감을 밀도 있게 표출해내고 있다. 1979년 '계간미술'에서의 과소평가 받는 작가로 소개되면서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도약기를 맞이한다.
1962년 부산시 문화상, 1984년 충무시 문화상을 받았으며, 1984년 국전 심사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