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홍원展 』
Lee Hongwon Solo Exhibition :: Painting
▲ 이홍원, 나무와 새, 45.5x37.7cm, 2015
전시작가 ▶ 이홍원(Lee Hongwon) 전시일정 ▶ 2015. 02. 05 ~ 2015. 02. 25 초대일시 ▶ 2015. 02. 05 AM 10:30 관람시간 ▶ Open 10:00 ~ Close 18:00(설 18~20 휴관) ∽ ∥ ∽ 모리스갤러리(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 T. 0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 풍자와 해학으로 부르는 숲 속의 노래 - 이홍원의 작품세계에 대한 고찰(考察)
★황선형(모리스갤러리, 아트허브 대표)
우리 시대의 민감한 사회적ㆍ정치적 단면들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이야기꾼 이홍원의 치열한 작품들은 풍자와 해학, 위트와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이홍원은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던 80년대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정면 돌파 함으로써 절망의 시대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지켜냈다. 그 동안 이홍원이 결사적으로 치열하게 생산해 낸 작품들은 이제 이순(耳順)을 지나면서 편안해지고 밝아졌으며 한결 여유가 생기면서 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이제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은 하나의 즐거운 일이 되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학년 때부터 개인전을 열었으니 이제 그의 화단에서의 경력은 대략 40여 년이 되었다. 이홍원의 40여 년의 작품들을 내용과 형식적인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고향 청원의 마동창작마을로 내려오기 이전 서울에서의 작품들과, 마동창작마을에 정착한 이후의 작품들로 대별(大別)하여 그 변화를 엿볼 수 있다.
▲ 이홍원, 말과 아이들, 45.5x37.7cm, 2014
▲ 이홍원, 말타기, 45.5x37.7cm, 2015
▲ 이홍원, 미루낭구 1, 45.5x37.7cm, 2014
먼저 마동창작마을 이전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홍원이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1985년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1984년 문제작가 작품전’일 것이다. 문제작가 작품전은 한 해 동안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을 평론가들이 추천한 후 투표를 통해 다득점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의 작품전으로, 그 동안 국전이나 각종 매체의 공모전과 같은 정해진 규범적 코스를 통해 안정적인 방법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는 안일함과 부작용에 대한 보안책으로 마련된 신선한 시도로 1981년 시행 첫해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는 젊은 신진작가들에게는 창작 열의에 대한 동기 부여를 제공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비평가의 위치와 비평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비평의 활성화를 촉진시켰으며 책임비평으로 발전하게 되는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추천평론가로 김윤수, 김인환, 박용숙, 성완경, 원동석, 유홍준, 윤범모, 이구열이 참여했던 ‘1984년 문제작가 작품전’에는 강명희, 이홍원, 황재형 3인의 작가가 선정되었다. 이때 평론가 중 한 명으로 참여했던 윤범모는 이홍원의 작품을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신축성이 있고 소재의 선택과 그것을 화면에 조명하는 방식이 기왕의 형식에서 일탈한 느낌이어서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표현방식도 종이 위에 수채 물감이나 먹으로 그린 후, 그 위에 다시 니스를 입히는 등 특출한 질감을 표현하고 있었고, 붓의 터치가 속도감이 있어 경쾌한데 이런 것들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고 평하였다. 그 후 1989년까지 시행된 문제작가 작품전은 이제 이름만 들어도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성장한 임옥상, 오윤, 민정기, 황주리, 정복수, 전준엽, 손상기, 안창홍, 신학철, 최욱경, 이철수, 박불똥과 같은 작가들을 배출해냈다.
그 후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통해 이홍원이 보여준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은 사회적ㆍ정치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힘겹게 지나오는 민초들을 위해서는 힐링이었고, 군사 정권을 향해서는 강한 돌직구로 견제구를 날리는 적극적인 현실 참여로 꺼져가는 위태로운 한줄기 빛을 지키는 수호자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시 이홍원이 다루었던 다양한 주제들을 살펴보면, 성인이 되며 잃어가는 순수성을 회복 시키기 위한 ‘동심 연작’과 정겨운 농촌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원형(原形)을 찾고자 했던 ‘농촌 연작’, 산업화 사회가 몰고 온 성(性)의 상품화와 온갖 투기로 물든 도시의 타락과 추악함을 고발하는 ‘산업화 연작’, 민중미술과 함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통일 연작’, 십이신상(十二神像)의 동물을 변용(變容)하여 삐뚤어진 시대상을 비꼬아 표현한 ‘십이신상 연작’과 같은 광범위한 주제로 전개되었다. 이렇듯 이홍원은 어린이의 동심, 농촌의 모습과 같은 평범한 주제부터 산업화와 통일이라는 무거운 주제까지 아우르면서 과거와 현재, 근원에 대한 문제점들을 적시(摘示)하고, 이를 직설적으로 거침없이 표현하며 자신만의 조형언어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하였다.
1995년 이홍원은 서울에서의 작품 활동을 청산하고 고향 청원으로 내려 오게 되었다. 이홍원이 새로 둥지를 튼 곳은 폐교되어 있던 학교를 예술창작 공간으로 개조한 마동창작마을로 다양한 장르의 여러 작가들이 모여 교류하며 작업할 수 있는 창작공간이었다. 고향에 안착한 이홍원은 이전 서울의 작업들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둡고 암울했던 작품들은 생기가 넘치고 밝아졌으며, 감정의 과잉에서 오는 직설적 표현들은 감정을 절제 시키면서 은유적 표현으로 바뀌었으며 작품의 주제 또한 자연과 동물 같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주제로 무게 중심이 이동 되었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ㆍ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시대적 상황과 함께 고향이 주는 편안함, 수려한 마동창작마을의 자연으로부터 받는 맑은 기운 그리고 연륜이 가져다 주는 내공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 이홍원, 미루낭구 2, 45.5x37.7cm, 2014
▲ 이홍원, 소과 어린이, 45.5x37.7cm, 2014
▲ 이홍원, 소와 소년 1, 40.9x31.8cm, 2014
▲ 이홍원, 소와 소년 2, 40.9x31.8cm, 2014
이후 이홍원의 마동창작마을에서의 생활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창작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품에 대한 창작 의지는 더욱 높아지고 작품의 양도 많아졌으며 대작의 작품들도 거침없이 쏟아 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필생의 역작은(앞으로 더 좋은 필생의 역작이 나오리라 확신하지만) 1999년부터 2002년까지 꼬박 4년이 걸린 대작 ‘숲 속의 노래 - 사계(봄, 여름, 가을, 겨울) 연작’일 것이다. 사계 연작은 백두대간 어느 숲의 웅장한 자태와 숲 속에서 펼쳐지는 평화로운 모습들을 사계절로 표현한 작품으로 작품의 크기가 주는 웅장함과 함께 우리 민족의 기상이 느껴지는 산세와 바위들이 어우러져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커다란 울림이 있는 역작이다. 또한 아내와의 개인적인 이야기면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전개하고 있는 ‘연리지(連理枝) 연작’ 또한 눈여겨볼 작품임이 분명하다. 서로 헤어져서 살 수 없다는 연리지를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칠월칠일장생전 七月七日長生殿; 7월 7일 장생전에서 야반무인사어시 夜半無人私語時;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재천원작비익조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재지원위연리지 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천장지구유시진 天長地久有時盡;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차한면면무절기 此恨綿綿無絶期; 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 비익조(比翼鳥)는 날개가 한쪽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의 날개가 결합되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새로 연리지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헤어져서는 살 수 없는 연리지. 언젠가는 꼭 만나 한 몸이 되어야만 하는 연리지. 당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처럼 너무도 간절하게 한 몸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적인 만남은 아내와의 만남도 그렇고 우리 민족이 다시 만나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통일염원도 그렇고 이홍원에게는 등가(等價)의 동질적 만남이었으리라.
한 20여 년 전 대중목욕탕에 갔었다.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즐기고 있을 때 몸에 문신을 한 건장한 체격의 장정 한 열댓 명이 들어왔다. 갑자기 욕탕에 긴장감이 돌고 더러는 에둘러 나가는데 나는 순간 눈이 마주쳐 멋쩍어서 “그림 참 멋집니다.” 하니 의외로 쑥스러운 듯 “아~ 예~” 하며 오히려 수줍어하는 것이 아닌가. 그 뒤 나는 유심히 장정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다 보니 몸이 움직일 때마다 문신 그림이 살아있는 듯 강하게 내 눈으로 들어왔다. 언제고 문신을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작가노트
2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품어 왔던 문신 작업의 모티브가 얼마 전 대규모 전시회를 통해 ‘문신 연작’으로 발표되었다. ‘그림에 그림을 더하다’라는 부제의 전시 서문에서 미술평론가 홍경한은 “이홍원의 ‘문신’ 연작들은 일차적으론 우리 내ㆍ외부에 부유하는 실제를 자기만의 시각언어로 치환한 이미지이지만, 이차적으론 당대를 살아가며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문신처럼 깊숙이 새겨놓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기표이다. 하지만 언뜻 보면 이 같은 속 깊은 의미를 잘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눈으로만 훑는다면 민중적 일상생활의 반영, 원류로 삼는 순진무구하고 유머러스한 여운, 조형 그 자체를 위한 형태가 아닌 심층적인 문화적 의미성과 일상성의 결합으로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현해 온 특유의 몸짓을 독해하긴 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되레 고찰하면 할수록 맛이 깊다.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솔직하고 소박한 심정이 기교 없이 들어 있기에 음미의 공명도 짙다. 특히 현대인들에 대한 애정과 친근감이 전통과 현대라는 호흡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소박한 형태 아래 한국적 미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되물음은 그의 그림 속 중심에 안착된 핵심이다. 더불어 새로운 조형성을 쌓아가려는 노력의 쉼 없음 또한 그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이다.”라고 평하였다. 이는 문신의 다층(多層)적 의미에 대한 분석과 이홍원의 문신 모티브의 당위성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놓은 것이었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이번 모리스갤러리 초대전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이홍원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드로잉 작품들이다. 이홍원의 트레이드 마크인 익살과 해학으로 묘사된 작품들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감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더욱 배가(倍加) 시켜 줄 것이다. 이홍원은 얼마 전 열린 전시회의 작가노트에서 “명화를 보면 감동이 있어 좋고 모던한 그림을 보면 철학이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원로 작품을 보면 농익어서 좋고 젊은 작품을 보면 신선해서 좋습니다. 이래 좋고 저래 좋으니 예술이란 놈은 참으로 신통방통한 것 같습니다. 난 그림을 재미있게 그리려 합니다. 재미있는 것도 예술의 한 부분이지요.”라고 예술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 그림을 재미있게 그리려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 이홍원, 수탉, 45.5x37.7cm, 2015
▲ 이홍원, 양과 아이들, 45.5x37.7cm, 2015
▲ 이홍원, 호랭이과 아이들, 45.5x37.7cm, 2015
이홍원은 ‘1984년 문제작가 작품전’의 작가로 선정되면서 ‘이홍원’이라는 작가로서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30여 년의 긴 시간 속에서 수 많은 고통을 인내하고 감수하면서 치열하고도 결사적으로 작품에 매진하여 이홍원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작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였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이홍원’의 이름을 가슴 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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