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그림/때로는 나도

나뭇가지에 앉은 초승달

조용한ㅁ 2015. 3. 24. 01:38

 

 

 

달빛 편지

 

                                    이 이



매일 밤 그는 긴 편지를 써서 불꺼진
내 창가에 놓고 간다
어떤 날은 깨어 있다가 그의 편지를 받기도 한다.
오늘도 그는 뜰 앞의 높은 잣나무 가지에
턱을 괴고 조용히 내 창가를 바라보며
편지를 쓰고 있다.
방에 불을 켜고는 그의 편지를 읽을 수 없다
뜨락에 숨어
사는 귀뚜라미들도 그의 편지를 받았는지
소리 높여 저마다의 목소리로
그것을 나에게 읽어주고 있는데
나는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조용한
목소리를 아무에게도 전해 줄 수 없다
이 세상 누구로부터도 받을 수
없는 황홀한 연애편지를
날마다 그에게서 받으며
이렇게 살고 있다.

 

 

 

 


  
Ασπρη μ?ρα και για μα? (White day for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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