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그림들/한국의화가 작품

윤형근

조용한ㅁ 2015. 6. 16. 22:26

 

 

 

무제, 49.5 x 129.3  1986  마포에 유채 

 

 

청다색, 180.6x139.4  1973, WE-1761
 

윤형근 I '무제' 1976 

 

 

 

 

고운 삼베에 검정빛 물감이 네모 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그 네모 모양을 한 검정빛은 세 쪽으로 되었다가 두 쪽으로 되었다가 때로는 한 쪽으로 되었다가 그렇게 수십 년을 해 왔 음에도, 그는 오늘도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삼베 빛깔은 찌들은 아랫목 장판 빛깔하고 흡사하고 검 정 빛깔은 목기(木器)의 짙은 옻칠하고 흡사하여 그래서 그 런지 검정뿐인 실로 대담한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가 않다. 훈훈함이 있고 푸근함이 있고 그런 때문인지 윤형근 선생의 그림은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말없이도 그 말을 쉽 게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림은 눈을 통해서 전달되는 사상 매체이므로 그림을 듣는 언어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많은 제약이 따른다.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이란 것도 많은 제약이 있는데 하물며 그림을 말로 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일이다 윤형근 선생의 그림에 대해서 나는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그림이든, 또 오랜만에 새로운 그림을 볼 때에도 우선 나는 잘 알겠다 하는 심정이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할 말 못할 말 많은 이야기를 했대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그림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이상한 선입견 같은 것이 있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인데 물방울을 몇 개 흘려서 놔둔 것도 왜 그랬는지 명명백백히 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검정 빛깔의 면적은 크게 잡고 여백의 면적을 작게 잡았을 때도 그렇고 반대로 했을 때도 그렇고 나는 명명백백히 안다고 생각된다 그 의도하는 바와 그 이야기를 알아듣는 데에 이상한 쾌감이 있다.

 

"일순에 그리고 공방을 도망치듯 나간다." 지난 여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작은 카탈로그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자서(自序) 형식으로 실린 글 중의 한 구절이다. 일순에 그리고 도망치듯 공방을 뛰쳐나간다는 윤 선생의 그림 그리는 방식은 마치 붓글씨 쓰는 형국과 같다 단숨에 그리고 일단 덮어둔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것은 선사(禪師) 들의 글씨 쓰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명나라 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도 그랬을 것 같다. 윤 선생은 아마도 서양철학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는 노자 이야기를 가장 즐겼다. 만나면 세상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군데군데를 일주하는데 노자 이야기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

 

윤형근 선생의 그림은 1970년대 초반, 유신 이후부터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때부터 검정빛 물감을 큰 붓으로 내려 긋는 일을 시작했다. 왜 그러시냐고 짐짓 물었더니 화가 나서 그런다고 하였다. 잔소리 없이 확확 긋는 그의 화포(畵布)에서 나는 시원함을 느꼈다. 사실 그는 그 무렵 대단히 화나는 일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 학교(직장)도 때려치우고 들어앉아 달리 할 일도 없고 캔버스 안에서 싸우는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양고기를 뜯고 잘들 노는데 나만 홀로 멀리 떨어져서 외롭다" 도덕경 속에 그런 말이 있는지 알 수는 없었어도 매우 그럴 듯한 말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매우 실감나는 말이었다.

 

색깔은 자꾸만 어두워져 가고 검정색 물감은 점점 짙어져 갔다. 계속 같은 방법으로 반복해 가는 과정에서 그의 그림은 더욱 단순해지고 검정색이 짙어 질수록 안에서 밝은 빛이 더 해 오는 것이었다. 그는 거기에다 삶의 이야기를 쏟아 부었다. 매일같이 그 검정 물감 속에다 인생의 이야기를 쏟아 붓고 그렇게 수십 년을 하는 동안에 화면은 온통 윤형근이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윤형근 선생의 검정은 그 속에 별별 색채가 다 들어 있는 희한한 검정이다.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으로부터 시작해서 흙빛 풀빛이 담겨 있다. 네모진 색면(色面)이 단정하고 엄격한 자세로 변해 가고 있다. 무언가를 무너뜨리려는 대단한 기세로 그는 오늘도 화면에 임하고 있다. 윤형근 선생의 검정에는 삶의 아픔과 고독과 허허로움이 예민하게 스며 있다. 그의 화면은 웬지 바늘 같은 것으로 찌르면 아픈 소리를 낼 것만 같다. 수식이 없고 설명이 없는 것은 그가 감추려 함이 아니고 그것들을 잘라 내어 간단한 곳에서 진실로 많은 것, 진실로 큰 것을 찾으려는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함(行)으로 해서 전체를 얻으려는, 노자의 말을 빌려서 태박(太朴)의 경지를 상상하게 하는 검정이 되기를 그는 기다리고 있다. 단순하다 못해 간단함, 아름드리 통나무 등걸이 그냥 나뒹굴고 있다. 말이 생겨나기 이전의 그런 큰 침묵 같은 것이 있다. 그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을 싫어한다. 도끼로 장작을 패는데 단번에 꽉 갈라지는 모양 같다고 할까. 그림에 그런 대담함이 우선한다. 그 숙연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찌보면 생명이 다하고 썩어서 흙과 함께한 듯한 느낌도 있고 아직 생명 현상이 시작되기 조금 이전의 고요일 듯도 싶다.

 

윤형근 선생은 눈의 즐거움을 되도록 잠재우고 인간 정신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일깨운다. 오늘날 수많은 현란한 그림 들 앞에서 그의 그림은 고독하다. 현란한 바깥 세계에서 지쳐 서 고단한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인생이란 무엇이던가 하고 생각하는 쉼터와도 같다. 고단한 사람들, 고독한 사람들만이 생의 깊은 밑바닥에 침잠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즐거움 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외면적인 것도 있고 내면적인 것도 있다. 그런데 내면적인 즐거움이야말로 진실로 영원에로 연결되는 최고의 보배가 아닌가 싶다.

 

윤형근 선생이 그림을 통해서 가고자 하는 곳을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하루하루를 넘겨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그림은 굳이 논리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따져서 볼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런 것은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고 우리는 다만 사람 보듯이 마주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좋은 친구 보는 것은 달 보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속담은 서양에도 있는 것 같다. 윤 선생의 그림을 보는 데 나는 달 보듯 한다. 아무 따짐새 없이 보는 것인데 그 자체로 즐겁고 그냥 좋은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자아가 더욱 확실히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의식이란 의식할수록 자아를 소심하게 한다. 무엇을 그려야겠다는 목적도 없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을, 언제까지나 물리지 않는 그 무엇을 그리고 싶을 뿐이다."예술가의 말은 상징적이면서도 알아 들을 수만 있다면 설명하는 것보다도 더 정확히 파악될 수 있다.

 


회화적인 것을 모두 파괴하려는 것과도 같은 이런 험난한 세기에 윤형근 선생은 점점 회화의 완성을 향해서 가고 있다. 금욕적이며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그런 고루한 것 같은 고전적인 삶을 통과하면서 최고의 자유에 이르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일 것이다. 윤형근 선생은 회화의 완성과 인생의 완성이라는 이 두 문제를 한 군데에 몰아 놓고 그것을 부수려는 듯한 기세로 검정 물감을 화포에 쏟다 붓는다.

 

최종태 (서울대 미대 조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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