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나무

조용한ㅁ 2016. 2. 26. 01:33

겨울나무 / 나태주



빈손으로 하늘의 무게를
받들고 싶다

빈몸으로 하늘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벗은 다리 벗은 허리로
얼음밭에서 울고 싶다.





나무 / 류시화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바람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나무의 꿈 / 정현종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무처럼/ 오세영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
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
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그 스스로 물러설때를 알듯


나무의 경지 / 정병근

그래도 그냥 서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누구에겐가 가서 상처를 만들기 싫었다
아무에게도 가지 않고
부딪히지 않고 상관하지 않으면서
혼자만의 생을 죽도록 살고 싶었다

자신만의 생각으로 하루의 처음과 끝을
빽빽이 채우는 나무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그게 한계다  치명적인 콤플렉스다
콤플렉스를 가진 나무는 아름답다

까마득한 세월을,
길들여지지 않고
설득 당하지 않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서 있는 그 한 가지로
마침내 가지 않고도 누군가를 오게 하는
한 경지에 이르렀다
많은, 움직이는, 지친 생명들이
그의 그늘 아래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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