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알겠지.
내가 이슬을 따라온 사연,
있는 듯 다시 보면 없고
없는 줄 알고 지나치면
반짝이는 구슬이 되어 웃고 있네.
없는 듯 숨어서 사는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의
거대한 마자막 비밀.
내 젊은 날의 모습도
이슬 안에 보이고
내가 흘린 먼 길의 눈물까지
이슬이 아직 품어 안고 있네.
산 자에게는 실체가 확연치 않은
이슬, 해가 떠오르면
몸을 숨겨 행선지를 알리지 않는,
내 눈보다 머리보다 정확한
이슬의 육체, 그 숨결을 찾아
산 넘고 물 건너 헤매다 보니
어두운 남의 나라에 와서
나는 이렇게 허술하게 살고 있구나.
이슬의 존재를 믿기까지
탕진한 시간과 장소들이
내 주위를 서성이며 웃고 있구나.
이제는 알겠지, 그래도
이슬을 찾아 나선 내 사연,
구걸하며 살아온 사연.
이슬의 하루는
허덕이던 내 평생이다.
이슬이 보일 때부터 시작해
이슬이 보일 때까지 살았다.
[출처] 이슬의 하루/ 마종기|작성자 이 하
마종기 시인 프로필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유로 연세대학교 의대에 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 ‘의사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우리는 서로를 부르는 것일까』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2009년에는 시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매년 봄과 가을 고국을 방문해 연세대학교의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머지않아 ‘고국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게 되기를 소망한다.
[출처] 이슬의 하루/ 마종기|작성자 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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