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조

바람이 연잎 접듯/ 유재영

조용한ㅁ 2018. 1. 3. 11:02

바람이 연잎 접듯/ 유재영

 

 

어린 구름 배밀이 훔쳐보다 문득 들킨

 

고개 쳐든 자벌레 이끼 삭은 작은 돌담

 

벽오동 푸른 그림자 말똥처럼 누워 있다

 

고요가 턱을 괴는 동남향 툇마루에

 

먹 냄새 뒤끝 맑은 수월재 한나절은

 

바람이 연잎을 접듯 내 생각도 반그늘

 

차 한 잔 따라 놓고 누군가 기다리다

 

꽃씨가 날아가는 방향을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 먼 그때, 약속 같은 햇빛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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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달개비꽃/ 유재영

 

 

고향 울안 어디서나 피다 지는 꽃이 있다

 

헤어지고 오던 날 남겨 둔 하늘처럼

 

유난히 동맥이 파란 몸매 야윈 그 아이

 

소꿉놀이 지치고 흙담 아래 주저앉아

 

그렇지, 도란도란 눈도 멀고 귀도 멀던

 

살며시 단발머리에 얹어주던 청보라

 

희미한 옛 시간도 꼭 쥐면 물이 들까

 

꽃 속에 있던 아이 어디에도 없는데

 

부르면 나올 것 같은 어린 날의 달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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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유재영

 

 

잎새만한 작은 교회

 

헐거운 풍금소리

 

흐릿한 등불 아래

 

무릎 꿇은 두 그림자

 

그들의

 

야윈 어깨에

 

가만히 와 얹히는 손,

 

첫눈 내린 교회마당

 

누가 다녀가셨을까

 

처음 보는 발자국이

 

너무 크고 깊어서

 

별처럼

 

은그릇처럼

 

오래도록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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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빛 저녁/ 유재영

 

 

외로움도

 

마주치면

 

별빛보다

 

아름다워

 

인간사

 

슬픈 꿈이

 

팔할쯤

 

머문 자리

 

꾸불텅

 

텅 빈 공간이

 

긴 목으로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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