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화

봄밤의 회상 / 이외수

조용한ㅁ 2008. 9. 3. 11:28

李外秀 展






봄밤의 회상 / 이외수



밤새도록 신문지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에 언제 한 번
꿀벌들 날개 짓 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 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 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등꽃 / 이외수


등꽃 1

제일 먼저 꽃 피는 것도
그대 등뒤에

제일 나중에 꽃 피는 것도
그대 등뒤에


돌아보아, 라고 문득 말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네

아무튼 쓸쓸한 건 하늘이겠지

- 시집 / 풀꽃 술잔 나비 중에서







흔들림... / 이외수


바람 불 때 흔들리는 목숨들은
흔들리는 목숨대로
그만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나니






양지바른 산비탈 봄날은 깊어
바람도 없는 한나절
꿀물같이 흐르는 햇살에 허리 적시고
산벌들 날개소리에도 흔들리는 싸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