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나도 바람이고 싶다/여행2

풍도

조용한ㅁ 2009. 3. 4. 10:34
서해 작은 ‘花랑’… 봄향기 ‘花르르’
인천에서 뱃길로 2시간 반…‘야생화 세상’ 풍도

보송보송한 솜털이 달린 꽃대를 밀어올려 보라색 꽃을 피운 노루귀(맨 위). 풍도에서는 섬 뒤쪽의 고갯길을 따라가면 쉽게 노루귀를 만날 수 있다. 맨 위에서 아래로 꿩의바람꽃, 대극, 복수초, 만발한 변산바람꽃 순이다. 사진=박경일기자
사람을 ‘중독’시키는 섬이 있다고 했습니다. 봄에 한번 발을 들이면 이듬해 봄에 또다시 찾게 되는 그런 섬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한 54t급 여객선 제3왕경호 뱃전에서 나른한 봄바다의 풍경을 내다보고 있던 한 사진가가 ‘나도 그 섬에 중독됐다’며 웃었습니다. 봄이면 노란 복수초가 무리지어 피어나고, 노루귀며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대극, 중의무릇까지 봄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꽃 세상’을 이룬다는 섬. 그 섬으로 가는 길입니다.

풍도. 풍요로울 풍(豊)자를 쓰는 섬(島)입니다. 하지만 이름처럼 풍요로운 곳은 아닙니다. 수심이 깊어 굴이나 바지락도 없고, 그물질도 여의치 않은 곳. 50여가구의 주민들이 비탈진 밭을 일궈 제가 먹을 채소나 겨우 키워내는 그런 섬입니다. 노인들의 허리는 오랜 노동으로 굽었고, 낡은 목선들은 포구에 묶여 하릴없이 파도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곳. 애초에 단풍나무 풍(楓)자를 썼다는데, 일제시대때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네요. 이 섬에 왜 ‘풍요로운 섬’이란 이름이 붙었을까요.

섬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은 화려한 봄꽃들입니다. 야생화가 이렇게 무리지어 피어난 곳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선착장이 있는 마을에서 당산으로 올라서면서부터 노란 복수초 꽃밭이 펼쳐졌습니다. 복수초의 노란 꽃은 마치 가을 국화처럼 흔하게 섬 이곳저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워낙 짧은 시간에 피고 져서 한 두송이만 봐도 운이 좋다는 변산바람꽃. 능선에서부터 한 두송이가 눈에 띄더니, 아예 구릉 쪽에는 온통 대지를 덮고 있었습니다. 지천으로 피어난 변산바람꽃 앞에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터졌습니다. 30여년 동안 야생화를 사진에 담았다는 사진작가도 “내 평생 이렇게 많은 변산바람꽃을 한자리에서 본 적이 없다”고 넋을 잃었습니다.

노루귀는 고운 솜털이 보송보송한 꽃대를 올리고 갖가지 색깔로 우아하게 꽃을 피웠고, 손톱만한 중의무릇도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남동쪽 양지바른 쪽에는 붉은 색이 감도는 민대극과 흰대극도 지천으로 피어났습니다. 발밑의 지난 가을의 마른 낙엽을 뒤지면 야생화며 봄나물들이 촉촉한 땅에서 슬금슬금 머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50가구 100여명. 그것도 대부분이 노인인 풍도 주민들은 봄꽃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입니다. “뭐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찾아오냐”고 묻습니다. 주민들은 섬 안에 피는 모든 봄꽃을 ‘유정꽃’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민들은 봄이면 매양 보는 유정꽃에, 외지인들이 새삼 감격해하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이나 봅니다.

하지만 카메라 하나 메고 봄꽃을 만나러 온 외지인들은 아름다운 야생화의 자태에 넋을 잃습니다. 풍도의 봄 야생화의 매력은 아는 사람은 압니다. 인천에서 풍도로 가고 오는 길에서 “꽃이 많이 피었더냐”는 인사를 몇번이나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이스케이프 팀을 따라 풍도로 야생화를 만나러 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름다운 봄꽃의 자태를 담으려면 카메라는 필수 준비물이랍니다.

 

 

            바닷바람에 섞여든 봄냄새… 아찔한 ‘꽃멀미’
                      작은 섬 풍도 엿보기

따뜻한 봄볕이 쏟아지는 오후, 뒷산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도의 마을 풍경. 선착장 뒤편으로 50여호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 섬으로 야생화를 보러간다고?…지천으로 피어난 풍도의 봄꽃들

인천 연안터미널의 매표소에서 풍도행 ‘제3왕경호’ 표를 팔던 직원은 묻지도 않았는데 “지금쯤 봄꽃이 아주 예쁠 것”이라며 웃었다. 그 직원이 처음은 아니었다. 앞서 연안터미널 주차장 직원도 “어디를 가느냐”고 묻더니 “풍도”라고 답하자, “얼마 전 다녀온 사람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하더라”고 말을 전했다. 풍도를 추천해 준 사람이 “봄 야생화를 보려면 산이 아니라, 섬으로 가야한다”고 했던 말이 그제서야 실감났다. 얼마나 봄꽃이 아름답게 피기에 이렇게 다들 ‘풍도의 꽃’을 말하는 것일까. 가보고서야 알았다. 나른한 봄날 서해의 작은 섬 풍도가 얼마나 보석 같은 봄꽃을 품고 있는지를.

인천 연안터미널을 출발한 여객선은 육도와 난지도를 거쳐 2시간30분 만에 승객들을 풍도에 내려놓는다.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있는 초등학교 말고는 이렇다 할 느낌이 없는 평범한 작은 섬. 선착장 한쪽에는 작은 목선들이 몇척 묶여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볕 좋은 담벼락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노인 둘이 대뜸 지팡이를 들더니 “이쪽 길로 가라”고 했다. 꽃구경 왔음을 알아채고 야생화가 피어 있는 곳을 안내하는 것이다.

풍도의 야생화는 선착장이 있는 마을 뒤편 야산의 500년 된 은행나무쯤에서 시작한다. 나무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면 무더기로 피어있는 노란 복수초가 눈길을 잡는다. 마을 주민들은 복수초를 ‘유정꽃’으로 불렀다. 아니, 아예 봄철에 피어난 모든 야생화를 주민들은 그렇게 불렀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복수초도, 노루귀도, 변산바람꽃도 모두 ‘유정꽃’이었다. 풍도에는 그 유정꽃이 아예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꽃사태가 난 것처럼….

# 아찔한 아름다움…야생화를 아름답게 감상하는 법

꽃을 ‘보는 법’은 꽃마다 다르다. 산수유는 노랗게 물든 색깔에, 벚꽃은 꽃보다는 그 규모에 눈길이 간다. 국화는 아찔한 향기이고 장미는 강렬한 느낌이다. 모양에 앞서 향기가 다가오는 꽃이 있고, 빛깔에 눈길이 가는 꽃도 있다.

야생화는 허리를 둥글게 굽혀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더 아름답고 또 감동적이다. 보라색 노루귀의 솜털 가득한 꽃대가 하늘거리는 모습은 마음까지 간질인다. 변산바람꽃의 노랗고 하얀 꽃술의 모습은 그 선명함으로 아찔하다. 길쭉한 타원형의 꽃잎을 가진 꿩의바람꽃이 살짝 꽃잎을 오므린 모습은 수줍은 색시 같다. 봄 야생화가 이렇듯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지난 가을의 마른 낙엽들이 덮인 메마르고 황량한 땅에서 연초록 빛으로 움을 트기 때문이다.

풍도에 피어있는 야생화 중 가장 많은 것이 복수초. 마을 주민들이 당산이라고 부르는 뒷산 어귀 숲속에 곳곳에 노랗게 무리지어 피어 있다. 변산바람꽃도 한쪽 비탈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귀족적인 풍모의 노루귀는 지금 한창 꽃대를 올리고 있다. 중의무릇은 꽃이 작아서 잘 눈에 띄진 않지만, 산길의 깊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제 막 꽃잎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진초록의 대극도 바다를 내려다보며 겹겹이 접은 꽃잎을 펴보이고 있다.

# 섬마을 풍도가 차곡차곡 접어 놓은 옛이야기들

풍도는 선착장을 중심으로 50여호의 집들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전형적인 섬마을이다. 밭이라고 해야 비탈면에 손바닥만 한 것들이 대부분인 데다 고추나 상추, 콩 따위를 심어 기르는 정도다. 고깃배를 갖고 있는 집이래야 5가구가 채 안 된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마저도 20여년 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것이라고 했다.

해방 이후부터 최근까지 풍도 주민들은 무인도인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의 작은 섬 도리도를 오가면서 살았다. 도리도는 물이 나지 않는 무인도지만, 굴이며 바지락이 풍성해 주민들은 1년에 절반 이상을 도리도에서 보냈다. 주민들이 기르던 개까지 데리고 무인도로 거처를 옮기면 학교도, 경찰초소도, 교회도 함께 이주했다. 주민들은 도리도에서 군대 막사 같은 임시 거처를 짓거나 토굴을 파고 지냈다.

“땔나무와 물, 이부자리까지 배에 가득 싣고 도리도로 건너갔지. 무인도인 도리도는 나무가 없는 바위섬이어서 집을 짓지 못해 토굴을 파고 산 사람도 많았어. 사는 게 말이 아니었지.”

마을에서 만난 이기일(76)옹은 “너나 없이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참으로 고생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다가 1982년 방송사에서 이들의 생활을 다큐멘터리로 담아 방송을 한 뒤, 이를 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시해 도리도에 집을 한 채씩 지어주기도 했다.

# 자연이 남아있는 풍도…그곳에서 즐길 것들

풍도는 그 흔한 해수욕장 하나 없는 곳이지만, 봄이면 야생화와 달래와 두릅 같은 봄나물들이 나고, 초여름에는 더덕이며 둥굴레 등의 약초들이 돋아난다. 야생화와 산나물들이 강원도 산골보다 더 풍성하게 나는 것은 천혜의 지형 때문이다. 섬은 남북으로 두 개의 작은 산봉우리가 둥글게 감싸 안은 형국이다. 능선이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곳에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이 적어 적당한 습기도 머금게 된다. 그 안에서 갖가지 야생화며 산나물이 자라는 것이다.

늦은 봄부터 풍도에는 우럭과 꽃게, 소라 등도 많이 난다. 물때만 잘 맞춰서 가면 낚싯배를 빌려 팔뚝만 한 ‘개우럭’을 낚아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 하루 30만원 안팎이면 배를 빌릴 수 있다. 섬 일주도로를 따라 마을 뒤편으로 가면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해안경관을 즐길 수도 있다. 섬 뒤편에는 10여년 전부터 돌을 깨서 실어나르던 흉물스러운 채석장이 있지만, 채석 작업이 끝나면서 이제 기계소리는 멈췄다. 그곳을 지나쳐서 가볍게 산길을 오르면 암릉을 배경으로 서해의 낙조를 감상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망망대해로 떨어지는 낙조를 즐길 수 있다. 하루 한 편의 여객선 외에는 육지로의 길이 끊기는 작은 섬으로의 봄여행. 카메라를 들든, 낚싯대를 챙기든, 꽃향기가 가득한 풍도에서의 휴식을 즐기든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풍도에서는 짙은 봄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인천서 오전9시30분 배편 짝숫날·홀숫날 코스 달라
풍도 어떻게 가나
서해의 작은 섬 풍도는 물리적인 거리보다 심리적인 거리가 훨씬 더 가깝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이 운항하고, 서남쪽으로 충남 당진 땅이 빤히 내다보이는 곳이지만, 이곳의 행정구역은 경기 안산시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이 이 섬의 주소다. 인천에서 풍도까지 가는 여객선은 하루에 한 번 오전 9시30분에 출항한다. 12시30분쯤 풍도에 도착해 다시 손님을 싣고 인천으로 되돌아온다. 배가 한 편밖에 없으니 풍도를 찾으면 아무리 일정을 짧게 잡아도 1박 이상이 필요하다.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짝숫날에 배를 타면 인천-풍도-육도-난지도의 순으로 돌고, 홀숫날에는 반대로 인천-난지도-육도-풍도의 순으로 돈다. 인천에서 풍도까지의 배삯은 왕복 2만3800원. 오는 4월3일부터 9일까지는 인천과 풍도를 오가는 제3왕경호의 선박 수리기간이라, 이 동안은 다른 배가 인천이 아닌 영흥도에서 출발할 예정이니 주의해야 한다. 풍도는 작은 섬이라 섬 안에서는 걸어서 이동하면 된다.
 
 
 
            민박집서 정성 담긴 음식 알싸한 ‘바디나물’ 제철
                  무엇을 먹고 어디서 묵을까


풍어민박의 손님 밥상. 어느 집이건 반찬으로 바디나물은 빼놓지 않는다.

여름철이면 낚시꾼들을 위해 통닭집에 횟집까지 들어서지만, 이즈음 풍도에는 문 연 식당이 한 곳도 없다. 민박집에 숙박을 하면 식사를 내오는데 의외로 섬 아낙들의 음식솜씨가 만만찮다. 마치 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척을 대접하듯 정성이 담긴 음식을 차려 내온다.

4, 5월이면 갓 건져 올린 꽃게무침도 내놓고 짭짤하게 담은 소라젓도 내놓는데, 아직 철이 일러 맛볼 순 없다. 대신 요즘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특미가 있다. 전남의 흑산도 등에서만 자라난다는 바디(사생이)나물이 바로 그것이다. 바디나물이란 뿌리를 한약재로 쓰는 전호의 잎을 말하는데 어린잎은 고기를 구워 쌈채소로 그냥 먹거나,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알싸하면서 독특한 풍미가 느껴진다. 깊은 산중이나 오지의 섬마을에서만 자라는 바디나물은 섬 주변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민박을 받는 어느 집이건 바디나물을 기본 반찬으로 내온다. 회 맛을 보고 싶다면 미리 민박집에 연락해야 한다. 요즘은 ‘간재미’가 제철.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간재미회가 입맛을 감친다.

민박집은 가장 최근에 지어 깨끗한 시설을 갖춘 ‘풍어민박’(011-767-9525)이 추천할 만하다. 민박집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바다가 막아선다. 풍어민박 윗집인 ‘기동민박’(032-833-1208)도 젊은 안주인이 맛깔스럽게 음식상을 내준다. 고씨 할머니집(032-886-3715)도 인심이 좋다고 알려진 곳이다. 섬 안에 관공서는 경찰초소 하나와 학교밖에 없다. 경찰과 교사들도 주민들과 마치 친척처럼 가깝다. 선착장 부근의 안산단원경찰서 풍도분소의 임유정 경장에게 물으면 섬을 둘러보는 코스 등을 상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