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생각 / 고정희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대 쓸쓸함에 다가갔다가
그 쓸쓸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내 긴 그림자를 아련히 광내며
강 하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거리에서 휘감고온 바람을 벗었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은방울꽃 하나
바람결에 은방울을 달랑달랑 흔들며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 이 세상 적시는 모든
강물은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뒷모습으로
뒷모습으로 흘렀습니다
-고정희의 詩<그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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