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글/수필.기타

잘 살기와 잘 죽기

잘 살기와 잘 죽기   


암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분은 목사님이십니다.
곁에서 아버지를 지키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 역시 목사님입니다.

아버지는 간암 선고를 받으시고 4개월을 더 사신 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병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 내용이 책으로 엮여 나왔습니다.
「빛 색깔 공기」(홍성사)는 그렇게 만들어진 책입니다.

목사님은 투병 중에도 계속 책을 읽으셨고
아들에게 자연을 잘 묘사한 터너(J. M. W. Turner)라는 화가의 그림이 보고 싶다며
그의 전집을 주문해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지금 책을 구해 읽어서 무얼 하겠나? 이런 생각이 드니?
나는 이걸 통해서 무얼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항상 매 순간에..
그 순간의 깨달음, 그 자체를 사모해야 한다.
공부를 하며 그 효용을 따지는 것은
이미 '깨달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것은 진리를 향한 바른 자세가 아니다."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아들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들은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지요. 
달란트는 어떤 재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삶 자체라고 말입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에서 평생 교수로 살 수 있었던 사람,
하지만 그 모든 좋은 여건을 '내려놓고' 페루의 빈민가로,
캐나다의 정신지체장애인 공동체에서
그들과 함께 머물렀던 헨리 나우웬이 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묵상집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에 얼마나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가?' 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에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길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죽음, 가장 큰 선물」(홍성사)이 됩니다.

죽음에 대한 깊은 묵상을 글로 써내려 간 뒤 나우웬은
그가 글을 쓰는 동안 머물렀던 조그만 집에서 빨리 벗어나서

장애자들의 공동체로 돌아가 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했습니다.
죽음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 다시 치열한 삶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어 합니다.

'아름다운글 > 수필.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철 스님의 마지막 유언  (0) 2010.03.22
예술과 종교의 갈등   (0) 2010.03.19
뒤편  (0) 2010.03.12
[스크랩] 검은등뻐꾸기는 어떻게 우나  (0) 2010.03.11
[스크랩] 산이 산을 떠나다 / 류시화  (0) 201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