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연가
피천득
1:: 길가에 수양버들 오늘따라 더 푸르고
강물에 넘친 햇빛 물결 따라 반짝이네
임 뵈러 가옵는 길에 봄빛 더욱 짙어라.
2:: 눈썹에 맺힌 이슬 무슨 꿈이 슬프신고
흩어진 머리칼은 한 낮 위에 오리오리
방긋이 열린 입술에 숨소리만 듣노라.
3:: 높은것 산이 아니 멀은 것도 바다 아니
바다는 건널 것이 산이라면 넘을 것이
못 넘고 못 건너가올 길이오니 어이리.
4:: 모시고 못 산다면 이웃에서 사오리다
이웃서도 못 산다면 떠나 멀리 가오리다
두만강 강가이라도 이편 가에 사옵고저.
5:: 보는 것만이라도 기쁨이라 하셨나니
지금도 이 땅 위에 같이 살아 있는 것을
어떻다 그 기쁨만도 드려서는 안되는고.
6:: 추억에 지친 혼이 노곤히 잠드올 제
멀리서 가만가만 들려오는 발자욱은
꿈길을 숨어서 오는 임의 걸음이었소.
7:: 그리워 애달파도 부디 오지 마옵소서
만나서 아픈 가슴 상사보다 더 하오니
나 혼자 기다리면서 남은 일생 보내리다.
8:: 목청이 갈라지라 엷은 가슴 미어질 듯
제 사랑 제 못 이겨 우는 줄도 아옵건만
아쉬운 마음이라서 행여행여 합니다.
9:: 번지고 얼룩지고 마디마디 아픈 글을
입술 깨물고서 말 만들어 보노라니
구태여 흐르는 눈물 편지 다시 적시오.
10:: 날 흐린 바다 위에 갈매기들 우는 고야
흩어진 머리칼에 빗질 아니 하시리니
비나니 임의 나라에 날씨 명랑 합소서.
11:: 때마다 안타까워 불러 보는 그 이름은
파란 하늘 푸른 물결 두사이를 지나가서
애달픈 목소리라도 다시 들려 주어라.
12:: 하루를 보내노면 와서 있는 또 하루를
꽃이 져도 잎이 져도 찾아 오는 또 하루를
닥쳐올 하루하루를 어찌하면 좋으리오.
13:: 오실리 없는 것을 기다리는 이 마음을
막차에 나리실듯 설레는 이 가슴을
차 가고 정거장에는 장명등이 꺼지오.
14:: 예서 마주 앉아 꽃다발을 엮었거니
흩어진 가랑잎을 즈려밟는 황혼이여
여울에 그림자 하나 흘러 흘러 갑니다.
15:: 문갑에 놓인 사진 고요히 빛을 잃고
어스름 어슴푸레 이 하루도 저무를 제
나뭇잎 지는 소리를 아픈 가슴 듣노라.
16:: 꿈같이 잊었과저 구름 같이 잊었과저
잊으려 잊으려도 잊는 슬픔 더욱 커서
지난 일 하나하나를 눈물 적셔 둡니다.
17
설움은 세월 따라
하루 이틀 가오리다
아름다운 기억만이
가슴속에 남으리다
엣 얼굴 떠오르거든
고이 웃어 주소서
18
훗날 잊혀지면
생각하려 아니하리
이따금 생각나면
잊으려도 아니하리
어디서 다시 만나면
잘 사는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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