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조

자규시(子規詩 = 소쩍새 시)---단종(端宗)

조용한ㅁ 2012. 3. 16. 23:04

 

  

자규시(子規詩 = 소쩍새 시)---단종(端宗)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 한 마리 원통한 새 궁중을 나와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 외로운 몸 외짝 그림자 푸른 산중을 헤맨다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 밤마다 잠을 청하나 잠은 이룰 수 없고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 해마다 한을 다하고자 하나 한은 끝이 없네.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 자규 소리도 끊긴 새벽 묏부리 달빛만 희고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 피 뿌린 듯 봄 골짜기 떨어진 꽃이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 하늘은 귀머거리라 슬픈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何乃愁人耳獨聽 (하내수인이독청) : 어찌해서 수심 많은 내 귀만 홀로 듣는가.

 

 

 

제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의 애처로움과 비통함이 절절히 묘사돼 있어

읽는 이의 가슴을 숙연케 한다.

단종이 여기에서 몇 달이나 이 애 끊는 생활을 했는지 모르지만

처음 청령포로 유배된 것이

1457년 6월이고 이곳 관풍헌 앞뜰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 그

해 10월 24일이었으니 청령포에 석 달,

이곳에 두 달쯤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단종이 이처럼 시를 읊어 울적한 심사를 달래며 유폐생활을 하는 동안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여섯째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가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금성대군은 2년 전 단종이 왕위를 찬탈 당한 후 수양에게 추방되어

순흥에 와 있었으며,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을 심복 시키고

대쪽 같은 영남 선비들의 뜻을 모아 수양을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 시킬 꿈을 키우고 있었다.

때마침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었으니 때는 이때였다.  

순흥에서 소백산맥 하나만 넘으면 바로 영월이고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어

많은 군사를 보유하고 있는순흥부사가 가담하였으니

일거에 단종만 이쪽 진영으로 모시고 복위를 선포하면 팔도의 민심이 속으로는

모두 단종에게 쏠렸을 때이니 능히 해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거사를 해 보기도 전에 밀서가 발각되어 수 많은 사람이 죽고

화가 단종에게까지 미칠 줄을 어찌 알았으랴.

단종을 살려 두고서는 복위운동이 그치지 않으리라고

판단한 수양과 그 추종자들은 단종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을 보내어 사형을 집행케 했다.

왕방연이 왕명을 어기지 못하여 사약을 가지고 관풍헌에 당도했으나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아 집행을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때 공생(貢生) 복득(福得)이란 자가 단종의 뒤에서 활시위로 목을 졸라

비참한 최후를 맞게 했다고 한다.

 

 

 

 

단종이 숨을 거두자 시신은 동강(東江)에 버려졌고,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데 영월 호장(戶長)이었던 아전 엄흥도(嚴興道)가

밤에 몰래 시신을 거두어 동을지산(冬乙旨山) 속으로 도망하다가

노루가 튀어 달아나는 곳에 눈이 녹았음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시신을

가매장한 후 온 가족과 함께 종적을 감추었다.

지금의단종왕릉인 장릉(莊陵)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이고

풍수가 들이 보아도 천하의 명당이라고 하니 하늘도 무심치 않았나 보다.

 

 단종은 생후 사흘 만에 어머니를 잃고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품에서 커

열한 살(1452년)에 왕위(조선 6대 왕)에 오른다. 그

러나 재위 3년 1개월 23일 만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이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로 유배돼

끝내 사약을 받고 숨진다.

 

 

'아름다운글 >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설(野雪)   (0) 2013.02.20
把酒問月 [ 파주문월 ]  (0) 2012.08.15
단종의 어시 : 자규시  (0) 2012.03.13
연밥따는 아가씨 허초희  (0) 2011.06.09
寄家書  (0) 201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