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들/강연호 빈들/ 강연호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 혼자 쌀을 안치고 국 덮히는 저녁이면 인간의 끼니가 얼마나 눈물겨운지 알게 됩니다 멀리 서툰 뜀박질을 연습하던 바람다발 귀 기울이면 어느새 봉창 틈새로 기어들어와 밥물 끓어 넘치듯 안타까운 생각들을 툭툭 끊어놓고 책.. 아름다운글/시 2015.04.19
당신이 나를 스칠 때/이성선 당신이 나를 스칠 때 구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산길을 걸으며 내 앞에 가시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들의 꽃 피고 나비가 날아가는 사이에서 당신 옷깃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당신 목소리는 거기 계셨습니다 산 안개가 나무를 밟고 계곡을 밟고 나를 밟아 가이없는 그 발길로 내 가슴을 스칠 .. 아름다운글/시 2015.04.19
햇살에게 / 정호승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글/시 2015.04.18
늑대야 늑대야 / 허홍구 늑대야 늑대야 / 허홍구 남자는 모두 도둑놈, 늑대라며 늘 경계를 하던 동창생 권여사로부터 느닷없이 소주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왔다 "어이 권여사 이젠 늑대가 안 무섭다 이거지" "흥 이빨빠진 늑대는 이미 늑대가 아니라던데" "누가 이빨이 빠져 아직 나는 늑대야" "늑대라 해도 이젠 무.. 아름다운글/시 2015.04.17
동백꽃 지다 - 이승은 동백꽃 지다 - 이승은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온 엽서 한장 말은 다 지워지고 몇 점 얼룩만 남아 이른 봄 그 섬에 닿기 전, 쌓여 있는 꽃잎의 시간. 벼랑을 치는 바람 섬 기슭에 머뭇대도 목숨의 등잔 하나 물고 선 너, 꽃이여 또 한 장 엽서를 띄운다, 지쳐 돌아온 그 봄에 아름다운글/시 2015.03.30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詩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詩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 아름다운글/시 2015.03.30
달빛편지 달빛 편지 이 이 매일 밤 그는 긴 편지를 써서 불꺼진 내 창가에 놓고 간다 어떤 날은 깨어 있다가 그의 편지를 받기도 한다. 오늘도 그는 뜰 앞의 높은 잣나무 가지에 턱을 괴고 조용히 내 창가를 바라보며 편지를 쓰고 있다. 방에 불을 켜고는 그의 편지를 읽을 수 없다 뜨락에 숨어 사는 .. 아름다운글/시 2015.03.27
저녁 노을/ 이해인 저녁 노을/ 이해인 있잖니, 꼭 그맘때 산 위에 오르면 있잖니, 꼭 그맘때 바닷가에 나가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놀 그 놀을 어떻게 그대로 그릴 수가 있겠니. 한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한번이라도 입어보고 싶은 주홍의 치마폭 물결을 어떻게 그릴 수가 있겠니. 혼자 보기 아까와 언니를 .. 아름다운글/시 2015.03.10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조병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 아름다운글/시 2015.03.09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아름다운글/시 2015.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