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소/천양희 <1>-나의 처소/천양희- 말굽소리 사라지고 남은 들길을 옮겨가고 있다 고삐도 없이 안장도 없이 세월 위에 무엇을 얹으려는 듯 오래전 나를 비켜간 풍경을 지우고 말없는 들에 손을 얹어본다 그까짓 잡풀 같은 거 들풀 같은 거 확 잡아채 멀리 던진다 들판이 아니었으면 바람의 내력을 .. 아름다운글/시 2015.01.05
어처구니가 산다 / 천양희 어처구니가 산다 / 천양희 나 먹자고 쌀을 씻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걸 알겠습니다 꽃 다 지니까 세상의 삼고 (三苦)가 그야말로 시들시들합니다 나 살자고 못할 짓 했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걸 알겠습니다 잘못 다 뉘우치니까 세상의 삼독(三毒)이 그야.. 아름다운글/시 2015.01.05
12월이라는 종착역 / 안성란 12월이라는 종착역 / 안성란 정신없이 달려 왔다 넘어지고 다치고 눈물 흘리면서 달려간 길에 12월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니 지나간 시간이 발목을 잡아놓고 돌아보는 맑은 눈동자를 1년이라는 상자에 소담스럽게 담아 놓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여유를 간직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또 한해.. 아름다운글/시 2014.12.30
사람의 일 / 천양희 사람의 일 / 천양희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 아름다운글/시 2014.12.19
그런 사람 있었네 그런 사람 있었네 -주용일- 목숨을 묻고 싶은 사람 있었네 오월 윤기나는 동백 이파리 같은 여자 지상 처음 듣는 목소리로 나를 당신이라 불러준, 칠흑 같은 번뇌로 내 생 반짝이게 하던, 그 여자에게 내 파릇한 생 묻고 싶은 적 있었네 내게 보약이자 독이었던 여자, 첫눈에 반한 사람 많.. 아름다운글/시 2014.12.17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지는 날이 없으리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아름다운글/시 2014.12.15
한 세상 사는 것 - 이외수 한 세상 사는 것 - 이외수 그대여 한 세상 사는 것도 물에 비친 뜬구름 같도다 가슴이 있는 자 부디 그 가슴에 빗장을 채우지 말라 살아 있을 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풀꽃 하나라도 못견디게 사랑하고 볼 일이다. 아름다운글/시 2014.12.15
방문객 - 마종기 방문객 - 마종기 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 눈 덮인 흰 나무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복잡하고 질긴 길은 지워지고 모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 아름다운글/시 2014.12.15
개는 없다...복효근 무슨 원죄로 개는 개로 존재하지 못하고 비유로서 존재하는가 너는 개야 개새끼야 이건 개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다 개의 새끼인 개새끼마저 개새끼라 불리지 못하고 강아지라 불리는 것을 보면 그 반증 이 아니겠나 단고기나 보신탕 사철탕을 보아도 그렇다 명명법이 영 개판이다 개고기.. 아름다운글/시 2014.12.12
12월 오세영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 아름다운글/시 201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