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열매 마종기 비엔나 오페른 링의 시월 저녁. 걸어가는 가늘고 낮은 바람 사이로 한 나그네가 다른 나그네를 알아본다. 철새도 아닌 새들까지 다 어디로 부산하게 떼지어 날아 가버리는 시간, 아무 이야기라도 눈자위를 적시고 마는 낯모를 골목길을 오래 헤매면서도 나는 아무런 설명이 .. 아름다운글/마종기 2018.08.18
늙은 비의 노래 / 마종기 늙은 비의 노래 / 마종기 나이 들면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찬비 내리는 낮은 하늘이 나를 적시고 한기에 떠는 나뭇잎 되어 나를 흔드네. 여기가 희미한 지평의 어디쯤일까? 사선으로 내리는 비 사방의 시야를 막고 헐벗고 젖은 속세에 말 두 마리 서서 열리지 않는 입 맞춘 채 함께.. 아름다운글/마종기 2018.03.03
[스크랩] (스크랩) 마종기/항구에서 * 항구에서 - 마종기 길고 황망한 객지 생활을 떠나 도착한 나라여. 어느새 저녁이 되어버린 나이에 지척이 어두운 장님이 되고 항구에는 해묵은 파도만 쌓여 있구나. 새벽 출항의 뱃머리들은 이제 다, 잘들 있거라. 고통은, 말 많은 사랑 중에서 사랑이 아니었던 것을 씻어버린다고 .. 아름다운글/마종기 2018.01.22
낚시질 - 마종기 낚시질 - 마종기 낚시질 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 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기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平生을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낚시질 하다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만은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에 엎드.. 아름다운글/마종기 2018.01.22
이슬의 하루/ 마종기 이제는 알겠지. 내가 이슬을 따라온 사연, 있는 듯 다시 보면 없고 없는 줄 알고 지나치면 반짝이는 구슬이 되어 웃고 있네. 없는 듯 숨어서 사는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의 거대한 마자막 비밀. 내 젊은 날의 모습도 이슬 안에 보이고 내가 흘린 먼 길의 눈물까지 이슬이 아직 품어 안고 있네.. 아름다운글/마종기 2017.11.11
어느 날 문득 / 마종기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60년 넘긴 질긴 내 그림지가 팔 잘린 고목 하나를 키워놓았어. 봄이 되면 어색하게 성긴 잎들을 눈 시간 가지 끝에 매달기도 하지만 한세월에 큰 벼락도 몇 개 맞아서 속살까지 검게 탄 서리 먹은 고목이.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60년 넘은 힘 지친 잉어 한 .. 아름다운글/마종기 2017.11.11
나를 사랑하시는 분의 손길 - 마종기 나를 사랑하시는 분의 손길 - 마종기 내가 마침내 세상살이의 긴 여정을 끝내고 하느님 앞에 서면 그분은 물으시겠지. 그간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고---. 나는 주머니 속에 소중히 모아온 것들을 보여드리겠지. 지워져 가는 노트장의 시구절, 시든 꽃잎, 자갈돌, 추억의 사진---. 그 아름답던.. 아름다운글/마종기 2016.11.03
길 - 마종기 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 아름다운글/마종기 2016.11.03
저녁 올레길 저녁 올레길 여기서부터는 내가 좀 앞서서 갈게. 오래 걸어서인지 다리가 아파오지만 기어이 떠나려는 노을을 꼭 만나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가야겠어. 모두들 내 시간은 얼마 안 남았다니까. 함께 걸어주어 고마웠어.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정신없이 걸었지. 가끔은 어디 어느 방향.. 아름다운글/마종기 201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