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 나호열 벽 / 나호열 방법은 세 가지다 가고 없는 사람 앞에 서성이듯 스스로 그 벽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예 그사람 잊어버리듯 벽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벽을 뚫고 벽을 넘어서거나 그러나 오늘도 나는 내 앞에 버티고 선 우람한 벽을 밀어보려고 한다 사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아름다운글/시 2014.07.01
눈물 나호열 눈물 나호열 길에도 허방다리가 있고 나락도 있다고 하여 고개 숙이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눈물은 꽃 지고 잎 지고 나서야 익을대로 익는 씨앗처럼 고개를 숙여야 숨을 죽였다 길은 시작도 끝도 없어 우리는 길에서 나서 길에서 죽는다고 꿈에서나 배웠을까 문득 내가 한 자리에 멈추.. 아름다운글/시 2014.07.01
[스크랩] 소곡(小曲)1~8 / 황동규 . 소곡(小曲)1 / 황동규 당신 모습이 처음으로 내 마음 속에 자위떴을 때 나는 불 속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위 위에 하나의 금이 기어가다 서듯 그렇게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의 불길 속에 조용함이었습니다 타는 불 너무 환해 귀 속과 귀 밖이 구별 안 되는, 그러나 귀 열고 기다.. 아름다운글/시 2014.06.28
오규원 새와 나무 오규원 가을이 되어 종일 맑은 하늘을 날다가 마을에 내려와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만나면 새도 잘 익은 열매처럼 가지에 달랑 매달려 본다 다리를 오그리고 배를 부풀리고 목을 가슴쪽으로 당겨 몸을 동그랗게 하고 매달려 본다 그러면 나뭇가지도 철렁철렁 새 열매를 달고 .. 아름다운글/시 2014.06.24
새와 나무 / 오규원 새와 나무 / 오규원 어제 내린 눈이 어제에 있지 않고 오늘 위에 쌓여 있습니다 눈은 그래도 여전히 희고 부드럽고 개나리 울타리 근처에서 찍히는 새의 발자국에는 깊이가 생기고 있습니다 어제의 새들은 그러나 발자국만 오늘 위에 있고 몸은 어제 위의 눈에서 거닐고 있습니다 작은 돌.. 아름다운글/시 2014.06.24
따뜻한 편지 . . . . . . . . . 곽재구 당신이 보낸 편지는 언제나 따뜻합니다 물푸레나무가 그려진 10전짜리 우표 한 장도 붙어 있지 않고 보낸 이와 받는 이도 없는 그래서 밤새워 답장을 쓸 필요도 없는 그 편지가 날마다 내게 옵니다 겉봉을 여는 순간 잇꽃으로 물들인 지상의 시간들 우수수 쏟아집니다 그럴 때면 내게 남.. 아름다운글/시 2014.06.24
아직도 / 나태주 아직도 / 나태주 아직도 그 전화번호를 쓰고 있었다 아직도 그 번지수에 살고 있었다 봄이 온다고 해서 울컥 치미는 마음 부둥켜안고 전화를 걸었을 때 물먹은 목소리는 아직도 스무 살 서른 같은데 어느새 쉰 살 나이를 넘겼다고 했다 아직도 김지연의 바이올린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 아름다운글/시 2014.06.23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 아름다운글/시 2014.06.20
꽃자리 / 구상 꽃자리 /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 아름다운글/시 2014.06.15
한 잎의 여자 1 오규원 - 언어는 추억에 걸려있는 18세기형 모자다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이 쬐끄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 아름다운글/시 201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