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 문정희 / 팬티 - 임보 치마 - 문정희 / 팬티 - 임보 (문정희의「치마」를 읽다가)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 아름다운글/시 2017.07.14
기차를 기다리며 / 천양희 기차를 기다리며 / 천양희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긴 길인지 얼마나 서러운 평생의 평행선인지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역은 또 얼마나 긴 기차를 밀었는지 철길은 저렇게 기차를 견디느라 말이 없고 기차는 또 누구의 생에 시동을 걸었는지 덜컹거린다.. 아름다운글/시 2017.07.12
행복 / 강연호 행복 강연호 이제는 행복해졌느냐는 안부가 그에게 온다 혓바늘이라도 일 것 같은 저녁의 비애 속으로 뚝뚝 떨어지는 질문의 풍경 행복? 그가 낮게 되뇌여 보는 입술의 움직임을 귀청이 따라가다 포기한다 별들이 빛나 보이는 건 멀리 있기 때문일까 멀리서는 그 역시 빛나 보일까 생각.. 아름다운글/시 2017.07.11
공광규 아름다운 사이 공광규 이쪽 나무와 저쪽 나무가 가지를 뻗어 손을 잡았어요 서로 그늘이 되지 않는 거리에서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사이여요 서로 아름다운 거리여서 손톱을 세워 할퀴는 일도 없겠어요 손목을 비틀어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서로 가두는 감옥이나 무덤이 되는 일도 이쪽.. 아름다운글/시 2017.07.08
공광규, 「소주병」 공광규,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신을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아름다운글/시 2017.07.08
공광규 파주에게 외 1편 공광규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임진강변으로 군대 갔던 아들 면회하고 오던 길이 생각나는군 논바닥에서 모이를 줍던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나를 비웃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가 버리던 그러더니 나를 놀리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오던 새떼들이 새떼들은 파주에서 일산.. 아름다운글/시 2017.07.08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유 안 진 슬퍼지는 날에는 어른들아 어른들아 아이로 돌아가자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가서 간밤에 떨어진 별똥 주우러 가자 사랑도 욕스러워 외로운 날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물어보자 개울가의 미나리아재비 물봉숭아 여린 꽃이 산기슭의.. 아름다운글/시 2017.07.05
말하지 않은 말 - 유안진 말하지 않은 말 - 유안진 말하고 나면 속이 텡 비어 버릴까 봐 나 혼자만의 특수성이 보편성이 되어 버릴까 봐 숭고하고 영원할 것이 순간적인 단맛으로 전락해 버릴까 봐서 거리마다 술집마다 아우성치는 삼사 류로 오염될까 봐서 ‘사랑한다’ 참 뜨거운 이 한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 거.. 아름다운글/시 2017.06.20